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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 일민미술관 - 大韓民國아 깨어라

by 갓미01 2014.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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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民國아 깨어라>

 

한경직, 「건국과 기독교」, 기문사, 1956

 

볼 지어다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니

만일 누구든지 내 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내가 저에게로 들어가 저로 더불어 먹고

저는 더불어 먹으리라 (묵 3:20)

 

"라오디게야" 교회는 불랭(不冷) 불열(不熱)의 교회로서 주님께 책망받았다. 그들은 주님을 환영하되 아직 문밖에 모시고 문을 열지 않았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 중심의 문을 열기 위하여 밖에서 두드리신다. 그리스도와의 이러한 관계는 개인도 그러하고 가정도 그러하고 교회도 그러하고 민족도 그러할 수 있다.

 

 나는 오늘 대한 민족 전체와 그리스도 곧 기독교와의 관계를 논하고자 한다. 기독교는 이조말기에 대한에 들어왔다. 이조는 창업 직후에는 '세종대왕' 같은 영주를 중심하여 한글을 창제하는 등 문화의 창조가 있었으나 점차로 유교의 문약(文弱)과 당쟁의 가열 그 적폐(積弊)와 죄앙 때문에 장차 무너질 운명이 직면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 남은 자를 구원하시고 죽은 나무 그루터기에 새 가지가 나올 준비로써 기독교를 반도에 보내셨다.

 

 이렇게 기독교의 본격적으로 대한의 문을 두드리기는 6, 70년 전이었다. 문을 두드린 지 이미, 6, 70년이나 아직 대한 민족 전체로 보면 그리스도는 겨우 마당에나 들어오신 셈이요 아직 문밖에 계시다. 나는 생각한다. 그리스도께서 계속하여 문을 두드리는 것이 지금 대한 민족의 영적 현실이 아닌가?

 이렇게 기독교는 아직 문박에 있으나 과거 50년간에 대한을 위하여 공헌한 바 적지 아니하다. 예를 들면

 

 1. 불교는 이미 고려 조 이후 부패하여 생명을 잃은 지 오래고 유교는 다만 형식과 인습만 남아 의지할 데 없는 대중은 미시에 빠지고 사신 우상의 종이 되어 참 종교의 내원(來援)을 대망하던 중 기독교는 참 신을 보여주고 그원의 도를 가르쳐 개인으로 영원한 생명과 소망을 가지게 하고 민족적으로 망국의 절망적 비애 중에서 위안을 얻고 사회적 부활의 희망을 가지게 하였다. 실로 기독교는 우리 민족의 가장 암담한 과거 50년 역사에 있어서 우리 민족의 가장 암담한 과거 50년 역사에 있어서 우리 민족의 유일한 위안과 소망의 원천이 되었다는 것은 누구나 부인치 못할 사실이다.

 

 2. 기독교는 문화적으로 20세기 신문명 곧 과학 문명의 소재요 선구자가 되었다. 문화의 수준이 제일 높은 영미에서 온 선교사들은 들어오면서 교회를 세울 뿐더러 반드시 학교를 세웠다. 재래 대한 서당에서는 오직 한문만 가르치던 때에 교회 학교에서는 수학이니 이과니 과학적 지식을 보급시켰다. 벌써 50년 전에 서울에서는 배재학당이니 이화학당을 설립해서 이승만 박사 같은 이를 교육시켰고 평양에서는 숭실이니 숭의 같은 학교를 세워 조만식 선생 같은 이를 양성하였다. 기독교를 떠나서 우리는 신문학의 소재자 선구자를 찾을 수 없다.

 

 3. 그러나 한 가지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기독교는 외래 문학의 정수를 소개할 뿐더러 대한 고유한 문화를 보존하고 발양하기에 노력하였던 것이다. 과거 대한 유교 선배들은 한문에 중독되어 한글을 언문이라 하여 우부우부(禹夫禹婦)의 글로 천히 여겼다. 기독교가 한글의 지식을 먼저 발견하고 성경과 찬송가를 한글로 발행하여 일반적으로 보급시켰고 한글로 시를 쓰고 소설을 쓰게 되었다. 이는 특별한 일례에 불과하니 다른 문화 방면에도 기독교는 대한 교육의 장점 미풍양속을 보존하기에 노력하였다.

 

 4. 기독교는 대한에 있어서 사회운동과 사회사업의 선구자가 되었다. 농촌 운동도 교회에서 먼저 했고 소비 조합운동도 기독교 청년들이 먼저 한 것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이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지 못한 것은 오직 왜정탄압에 인함이었다. 그러한 중에서라도 위생시설 자선 사업은 거이 기독교의 독점이었다. 병원, 나병원, 요양원, 고아원, 양로원 등 거이 기독교의 사업이었다. 이렇게 기독교는 가장 불행하고 가난한 자에게 먼저 복리를 가져오기를 위하여 노력한 것이다.

 

 5. 기독교는 과거 반세기간에 사회적으로 도덕적 중생의 원동력이 되었다. 이조말기의 유교의 도덕적 타락은 말할 것도 없다. 극단의 형식주의에 흘러 효도라면 부모 생전에는 어떻게 대접하였든지 사후 삼상(三喪)을 잘하는 제사주의로 화했고 한편 불효삼천(不孝三天)이나 무후위대(無後爲大)라 하여 축첩을 장려했으며 남존여비의 봉건사상을 고조하여 부녀의 모든 활동을 막았고 반상(班常)의 구별로 계급차별이 심하였다. 기독교가 들어와서 유교의 폐를 시정하고 성(性)도덕의 정화를 부르짖어 가정의 신성을 회복하고 여자를 해방하여 남자와 같은 교육과 활동의 기회를 주었고 반상의 차별이 없이 만인의 평등을 주창하였다.

 

 6. 더욱 기독교는 국가적 견지에서 보면 애국운동의 중심 세력이었다. 三一운동 당시의 기독교의 역할이 어떠하였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조국 부흥 운동에 헌신한 애국지사의 대다수가 신자였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도산(島山)' 선생 '남강(南崗) 선생 비롯하여 지금 생존하여 지도하시는 이승만 박사 김구 김규식 박사 그 외에 국가를 위하여 순국한 허다한 애국지사의 수는 오직 하나님만 아실 것이다.

 

 7. 뿐만 아니라 과거 50년 역사에 있어서 오직 기독교만이 지금 많이 듣고 말하는 소위 민주주의 사상의 교육자였다. 개인의 생명 인격 권리에 대한 존중 사상, 인간의 자유사상과 인간의 평등사상은 오직 기독교만이 가르쳤다. 이것이 이 사상의 근본 성경이 가르치는 인생에 대한 견지인 까닭이다. 또 왜정이 기독교를 압박한 이유도 사상적으로 기독교는 일본 제국주의와 근본적으로 배치되는 까닭이다.

 

 8.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떻게 이 민주주의 사상을 가르칠 뿐더러 사실 모든 신교 특히 장로교회는 민주주의 정치의 실행자였다. 장로교회는 문자 그대로 민주주의 정치를 각 지교회와 노회와 총회에서 실행하여 왔다. 지교회에서 장로 집사를 선거하는 것 목사를 청빙하는 것 노회에서의 모든 정치는 민주주의 원칙에 의한 것이다. "미국"이 1776년 독립선언을 한 후에 헌법과 모든 정치 훈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금일 대한에 있어서 민주주의의 정치 훈련을 받은 이는 기독교 신자밖에 없다.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아직 문밖에 서 있는 기독교가 이상과 같은 위대한 공헌을 하였거든 이 기독교를 우리 민족이 전적으로 받는다면 장래에 얼마나 더 큰 공헌을 하겠는가. 과거 대한 50년 역사를 정관하년 하나님께서 벌써 1945년에는 해방이 있을 줄 아시고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이 날에 대비하기 위하여 기독교를 보내신 것이 분명하거든 어찌하여 우리 신자도 아직 이 사명을 확실히 깨닫지 못하고 있으며 대한 민족 전체는 아직도 미지근하여 기독교를 문밖에 세워두는가? "경찰서 열을 세우는 것보다 교회 하나 세우는 것이 났다"는 김구 주석이 말씀은 얼마나 타당한 말씀이냐!

 

 지금 대한 민족은 중대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때야말로 민족 존망지추이다.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한다고 하면서 민주주의의 정신적 기반인 기독교를 떠나서 어떻게 잘 실행되겠는가? 민주주의는 국민의 각성과 도덕적 향상이 없으면 불가능한데 기독교를 떠나서 어디서 이를 기대할 수 있는가? 유물론적 폭력적 독재적 사상 기초 위에 민주주의 대한이 건설될 듯 싶으냐? 민주주의이 근본정신은 자유인데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하는 생명보다 자유를 사랑하는 민족에게 독립이 있지 자유보다도 자기의 이권 먹을 것부터 찾는 민족에게 독립이 있을 듯 싶으냐?

 

 이러한 중대한 시기에 아직까지 그리스도를 문밖에 세워두는 우리 민족의 사회상태가 어떠하냐? 그 사상이 얼마나 혼돈하여 그 질서가 얼마나 물란한가. 저 영남사건의 잔인무도한 참상을 보라. 우리 민족에게 이렇게도 포악성 잔인성이 있었던가? 하고 스스로 전률을 금치 못하겠다. 그러나 어느 민족이나 사상이 악화되면 이렇게 될 수 있다. 하나님을 모르고 동포를 모르는 사상이 그 머리를 지배하게 되면 이렇게 되는 것이다. 그런대 이러한 폭동을 어떤 정당에서는 "조국 독립을 위한 궐기"라고 했다. 이러한 거짓 지도자가 장안 거리를 활보하는 모양이다.

 

 여러분 기독교가 아니면 대한 민족은 서로 싸와 망하고 말것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때야말로 대한에 참 애국지사가 있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가 신앙에 들어올 것이다. 그야말로 이때는 민족을 살리기 위하여 생명을 내대고 전도할 때에다. 대한 민족의 유일한 소망은 그리스도이다. 아직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겠는가.

 

 오! 대한 민족이여! 그리스도로 하여금 더 오래 문밖에서 두드리게 하지 말고 우리의 중심의 문을 열어 놓고 그리스도를 영접하자. 나자나 여자나 선생이나 학생이나 노동자나 농민이나 다 구주를 영접하자! 어떤 지도자들은 "글세 다 믿으면 좋기는 하겠지만......" 이렇게 말한다. 이런 미지근한 태도는 쓸 떼 없다. 기독교가 과연 대한을 살릴 유일한 진리인 줄 알면 뜨겁게 환영할 것이다. 미지근한 신앙으로 구원을 얻는 자 없고 무엇에나 미지근한 태도로 성공한 자 없다. 대한 교회야말로 뜩운 마음으로 회개하야 하겠다. 미지근한 소위를 버리고 뜨겁게 믿고 전도할 때다. 오늘 기독교에 대하여 편견과 반감을 가진 무리는 두 가지 종류다. 하나는 우상 숭배적 사교(邪敎) 중심의 "일본" 문화의 감화를 받은 계급인데 이들은 기독교가 진리인줄을 알면서도 "일본" 문화의 잔재가 아직도 머리에 남아 있어서 교회에 나오기를 싫어한다.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는 이렇게 종교에도 큰 영향을 준다. 또 하나는 유물론자들이니 이들은 육신 생활에 눈이 어두워 모든 정신방면을 잊어버리기는 "배로 하나님을 삼는 자"들이다. 영적으로 얼마나 가련한지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들이 회개치 않는 한 새 대한의 적인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 신자는 이 두 가지 대적 곧 "일본" 신도 문화의 잔재와 유물주의 사상과 생명을 걸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주께서 "감람산"을 넘어 "예루살렘"을 들어오실 때다. 구비를 도니 "시온산"성에 걸설된 아름다운 "예루살렘" 전경이 안하(眼下)에 전개된다. 아름다운 성전, 궁궐, 시가, 주택,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 금성이었다. 얼마나 반가웠으랴 얼마나 기뻣으랴, 그러나 주님은 크게 소리를 내어 우시면서 탄식하였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내가 너희 자녀를 모으기를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리 몯음 같이 여러 번 하려 하되 너희가 원치 아니하니 이제라도 너희가 평안한 일을 알았으면 다행하려니와 오직 네 눈에 숨겼으니 날이 장차 이를지라. 네 원수도 토성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을 에워싸고 또 너와 그 가운데 있는 자식을 땅에 내어 던지며 돌 하나도 돌 위에 첩놓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하시는 날을 네가 아직 못함이라."

 

 여러분 우리는 이 말씀에서 특별히 두 가지를 주의하여야 한다. 그것은 "평화에 속하는 일을 알았다면!" "권고하시는 날을 알지 못함이라"이다. 즉 평화로 인도하는 길을 보여주었으나 그 권고를 듣지 않았다. 그 결과 돌 하나도 돌 위에 첩놓이지 아니하는 멸망이었다.

 

 오늘 우리 민족은 어찌하려는가? 하나님께서 지금 기독교를 통하여 평화의 길을 보여 주신다. 대한은 이 길을 따르련는가? 배반하려는가? 지금이야말로 권고의 날이다. 이 권고를 들으려는가? 배치하려는가?

 

 대한 민족아 깨어라!

 마음의 문을 열어라!

 그리고 주를 영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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