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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AGE/Life

특집, 월정병

by 갓미01 2013.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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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덕후들이 사랑할만한 빛깔을 자랑하는 월정리의 바다. 돌 만큼이나 흔한 제주의 바다들 중에서도 사람들은 그 동네 바다를 유난히 좋아한다. 사과같은 월정리, 예쁘기도 하다. 그렇게 예쁨 받는 것들은 쉽게 질투받기 마련이다. 북적이는 사람들로 예전의 한적함을 잃어버렸다는 독사과 같은 월정리. 질투 파워 충전하고 눈 흘기러 가본다.



 타겟의 범위를 좀더 정직히 해야겠다. 



 나는 바다를 향해 환하게 트인 카페에 편히 앉아 커피가 겁나 맛대가리도 없으면서 비싸기만 하다는 욕을 한다. 마린 원피스를 입고 선글라스를 장착한 채, 찍은 사진을 여러 번 확인하며 셔터를 누르고 누르는 관광객들이 거북하다. 제주시내에서도 한 시간이나 떨어진, 원래는 조용했던 이 곳에 육지것들이 창궐한지는 꽤 됐다. 하지만 나는 이제서야, 겨우, 월정리라는 동네에 관심을 가지는 제주도민씩이나 된다.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 내려야할 곳을 놓치고 `월정리는 한참 지났주`라는 소리를 듣는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 지쳐 번호판에 `허`가 붙은 차를 향해 손을 흔든다. 히치하이커 픽업하는것도 그들의 로망일것이라고 마음대로 확신하며. 


 충주에서 왔다는 커플은 뒷자리에 놓인 짐들을 트렁크로 옮겨가며 흔쾌히 자리를 내준다. 



저희 제주도사람인데 길을 잃어서요 



 제주도에서 25년밖에 안살아봐서 지리를 잘 모를뿐인데, 제주도 사람이 제주도에 안 가본 곳이 많다고 핀잔을 자주 듣는다. 그럴때마다 좋은걸 갖고 있으면서도 좋은줄 모르는게 특권 같기도 하고, 그 좋은걸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건 촌스럽지 않나하고 생각한다. 이런 게으름이 육지것들이 찬양해 마지 않는 제주도에겐 얼마나 모욕적일까. 심심한 제주를 벗어나고 싶어했지만 육지것들이 제주를 선망할때면 기분이 썩 나쁘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바글바글 거릴때엔 어김없이 신경이 거슬리는 것이다.


 확실했던 타겟을 향하던 화살이 꼿꼿이 돌아서서 나를 향한다. 정신 차리자. 난 제주도토박이씩이나 된다. 25년 된.


 육지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제주도민은 그곳에서 오히려 이방인이 된 것 같은 색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머리를 아무렇게나 기르고, 웃옷은 벗어 던지고, 마시고, 웃고, 노래한다. 제주보다 훨씬 더 따뜻한 나라의, 나무라곤 야자수밖에 없는 섬사람들 같다. 그런 섬사람들의 커피란... 놀랍게도 겁나 맛이 없다. 맞아본 바가지가 있어서 그런지 질 대비 가격의 무심함을 더 잘 아는 듯하다. 



 에어컨도 안틀어주면서.



 들리는 대화를 견디다보니, 그 놈의 프레임 창문 때문에 바다가 있고, 주차금지 표지판은 사라져야 될 것만 같다. 사진에 거슬리는 주차금지 표지판이 문제가 아니라 줄줄이 늘어서 있는 번호판 허1234의 문제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흉내낸 까페들도 별로일 지경인데 다닥다닥 붙어있는 차들이라니.


 들리는 소식엔, 최근 생긴 게스트하우스들에서 게스트하우스 아르바이트를, 숙식을 제공하는 대신 (게스트하우스 일은 그리 힘들지 않고 여긴 무려 제주도니깐) 무급으로 취급한단다. 제주도에 내려와서 조용히 글 쓰는 일이나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종종 그런 아르바이트를 한다는데, 그들에게 적절한 조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제주도에서 지내는것이 무슨 유세라고. 그 주인들, 낯짝도 두껍다.  



 그런 머리 아픈 풍경을 까페들과 게스트하우스들이 만들어냈을지라도, 해변의 사랑스러움을 잘 담은 까페도 있고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바닷가 동네의 바람과 습기가 전해지는 까페(단지 에어컨을 안틀어줘서만은 아니다). 나는 관광객이다 포스를 지닌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도, 커피 맛이 기분 나쁠지라도, 돈 주고 사먹기 억울한 닭꼬치 홍보 노래를 신명나게 불러댈지라도, 어찌 할 수 없이, 조금은 마음을 열게 되는.



 옷들도 꽤 예쁘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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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격, 월정리안이 되는 법 - 월정리안의 MUST HAVE ITEM ! 


남 : 통이 넓은 바지. 검게 그을린 피부. 아무렇게나 기른 머리 또는 상투. 조리(삼선 슬리퍼는 자칫 MT 온 대학생 같아 보인다). 아무 곳에서나 기타치고 딩가딩가. 기분 좋은 넉살까지 갖췄다면 진정한 월정리안!


여 : 편안한 꽃무늬 원피스 아니면 통이 넓은 바지. 새초롬한 표정 장착. 그러나 누군가 말을 걸어오면 환하게 받아들여줄 정도의 여유. 애완견이 있으면 좋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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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의 눈알로 바꿔 끼우고, 매의 발톱으로 마구 할퀴어 보겠단 정신으로 월정리 보고를 마쳐내야 했지만 그 날의 더운 태양과 바닷물기 그득한 공기를 잊지 않을것 같다. 어떤 이는 이미 그곳에서 여유로웠고, 어떤 이는 어색하게 여유를 찾고 있었고, 어떤 이는 자랑하듯 행복했고, 어떤 이는 그 행복을 의심했을지 모른다. 이 곳의 어떤 것들, 또는 모든 것들이 눈에 보이는 것에 의해 여유와, 낭만과, 행복으로 꾸며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 곳에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 곳의 모래해변 위 맨발 사진은, 프레임 창의 바다 사진은, 푸른색 핑크색 칵테일의 사진은 방명록일 뿐, 행복의 크기를 대변해 주는 것이 아니니까.  



 그러니까, 이 사과같은 월정리, 백설공주가 혹할만큼 매력적으로 보여야 한다는 부담을 주지도 말고 가지지도 말자. 똑같이, 사람 사는 동네다. 



육지것들, 섬사람들 할 것 없이, 사람 사는 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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