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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Y PAGE/Philosphy

행복을 포기하고 의무만을 수행하는 것이 도덕인가?

by 갓미01 2023.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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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무지는 악인가?

 

선한의도가 선한 결과를 불러오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선인지 악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무지가 악이다. 무지는 단순한 결핍의 상태가 아니다. 몰라서 한 행동은 그 무지로서 악이 된다. 그것이더 문제가 될 수 있다. 무지는 불안과 공포를 낳는 것.


but, 소크라테스 '악한 줄 알면서도 악한 의도로 악한 결과를 내는 것이 더 악하다'
타인에 대해서 폭력적이 된다. (독재자들은 불안과 공포감이 강하여 폭력적, 억압적이다.)
몰라서 한 행동도 책임이 있다. 인간은 지적결함을 극복해야 할 의무가 있다.
ex. 잘못된 자식사랑 - 상대를 억압, 파괴하게 되는

 

 

 

2. 행복을 포기하고 의무만을 수행하는 것이 도덕인가?

 

행복과 도덕의 관계.
불행해지더라도 도덕적이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인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도덕적이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도덕을 통해서만 행복해질 수 있는가.
행복과 도덕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가.
도덕은 근원적으로 행복하기 위한 것인가.
인간을 불행하게 하는 것은 도덕이 아닌 것인가.

 

칸트의 윤리학 : 행복과 도덕의 관계를 분리
공리주의 : 행복과 도덕의 관계를 연결

 

"왜 도덕적이어야 하는가"
타인의 시선, 사회적 강압 때문일까.
도덕적인 모습이 가면으로써 (자기 이익을 위한) 사는 사람들이 많다.

 

칸트 '의무론적 윤리설' (동기론적 윤리설)
절대적 의무 (도덕) => 정언명법 (무조건 ~하라) 형태 요구 cf. 가언명법 (만약~싶다면, ~하라)
삶의 궁극적 목표는 행복이 아니다. 의무감이 동기, 의무에 일치하는 행위.
덕윤리 : 덕성교육, 성품교육 강조. 습관적으로 좋은 행동을 하게 하는
도덕적 행위는 자율적 행위로 이성의 요구에 충실한 것. cf. 타율적 행위는 강압, 감정상태, 동정심 : 반드시 도덕적 행위를 가져오는 것들이기도 함. 선한행위의 중요한 원동력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 칸트는 철저한 이성주의자

 

흉 '동정심은 도덕의 원천이다'

 

이성적일수록 도덕적일 수 있을까, 감성적일수록 도덕적일 수 있을까.

 

결과주의 - 행복이라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도덕적인 것 => 상대주의

 

직접적 행위에 대한 책임
무위에 대한 책임

 

의무감에 기초로 한 도덕행위
자연스럽게 도덕적으로 한 행위

 

도덕적행위 / 비도덕적 행위 : 옳고 그름의 문제
무도덕적 행위 : 선택, 취향의 문제
ex. 소고기를 먹는 행위 - 일반 / 힌두교

 

칸트의 도덕적 행위 : 변하지 않는 절대적도덕이 있다.
cf. 도덕적, 비도덕적 행위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마르크스 : 비도덕과 도덕의 경계선은 현실에서 권련을 가진 자가 그어 놓는다. 그러므로 약자의 삶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사회의 지배적가치는 강자의 권력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이데올로기이다.

민주주의 안에서 다양한 목소리 but, 여론을 주도하고 언론을 주도하는 유력집단이 존재.
cf. 양극화 상황 (이해 관계의 대립)임에도 불구하고 투표성향은 비슷한 경향이 있다.

 

마르크스 : 강자의 도덕
니체 : 약자의 도덕 (약자 : 초월하려는 의지가 결핍된 자, 하나의 해석과 가치에 매몰되어 절대화 하려는 자 but, 현실에서 강자일 수 있다.)
'힘에의 의지' '권력에의 의지' : 자기 강화, 초월, 실현에의 의지. 강자의 도덕
ex. 독수리 : 용기 / 양 : 원한, 복수심 -> 가치 결정

 

독수리만 가지고 있는 기질은 양에게 있어 '악'이고, 양이 가지고 있는 기질은 '선'이 된다. 그러나 그 기질은 노력에 의해서 얻은 것이 아니며, 원한과 복수심에 의해 결정된 선악의 가치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다. 독수리에게는 양은 나쁜 것이 아니며 자신에 대해 자긍심을 가지고 있다. 선악이라는 이분법적사유에 매몰딘 양은 창조성이 결여되어 나약한 것이다. 자신의 삶에 없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능력이 있다면 그것은 더이상 악이 아니다. 니체에게 있어 이분법적 사유는 부정의 정신이다. 부정해야 할 것이 아니라 긍정해야 할 사항이다. 니체는 강자의 해석, 창조에의 의지, 가치 의미의 의지를 실현하려는 자이다. 해석의 허구성을 폭로하는 가운데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 해석을 창조한다느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끊임없는 변화 안에서 새로운 해석을 창조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초인 (극복하는 자, Ubermenshe) : 유목주의적 삶 (노마디즘). 끊임없이 움직이는, 머물러 있지 않는, 안착은 다른 곳으로 떠나기 위해 잠시 머물러 있는 것. "끊임없는 새로운 해석" 돌아다니지만 하나의 신념에 갇혀있는 사람은 정주인일 뿐이다. (칸트는 평생 한 도시를 떠나지 않았지만, 유목주의적 삶을 산 사람이다) 노동이 아니라 놀이로서 삶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창조인=긍정인-운명에의 정신, 최고의 긍정 -> 삶의 강화

 

'신은 죽었다' : 시대상 반영. 무엇을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여버린 -> 태양이 사라진 허무주의
물질적인 것에 기대는 or 기댈 것이 없는 위기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가능성. 허무주의의 양면성 - 기댈 곳이 없다. 기댈 곳이 없음에 억제와 통제에서 벗어난 창조가 가능하다.

 

'관점주의'
바나나와 고릴라 이야기 - 변화된 시대 상에서는 기존의 도덕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삶을 억압하고 약화시키는 것일 뿐이다. 변화된 시대 안에서는 새로운 도덕이 필요하다. 모든 것을 보편화 시키는 것에 대한 문제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강자의 도덕

약자의 도덕 : 약자에게는 의미가 있다. 허구라고 해서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것이 진리이기 때문에 보편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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