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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고전주의의 분열과 로코코 시대

by 갓미01 2014. 4.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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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르 브랭과 아카데미

 

 프랑스 고전주의 회화를 대변하는 화가는 르 브랭Le Brun이라는 사람이다. 그는 정부에서 허가를 받고 프랑스의 아카데미를 파리에서 결성한다. 국가에서 왜 아카데미를 인정했느냐, 간단하다. 통제하기 좋기 때문이다. 아카데미하면 두 가지가 있다. 과학아카데미와 예술아카데미인데, 과학과 예술에서 절대왕정의 취향을 보장해줄 수 잇는 관료조직이다. 절대주의 왕정에서는 예술적 취향까지도 통제하려고 했다. 그래서 1648년에 아카데미에서 그림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뻔해진다. 왕의 명성, 궁정의 광휘, 국가적 과제의 선전. 굉장히 관료적인, 국가 프로간다가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전체주의 예술과 비슷하다.

 

 

 

2. 광적인 신고전주의 

 

 사회주의 리얼리즘론이나 나치 예술론을 보게 되면 굉장히 신고전주의 풍이다. 프랑스도 이런 식이었다. 국가에서 취향까지도 간섭하는. 르 브랭이라는 사람 자신이 원리주의자고 독단주의자였다고 하기 때문에 이탈리아 이론이 프랑스에 들어가 훨씬 더 원리주의적이고, 더 반자유적이고, 더 광신적으로 실천이 된다. 교조화 된다는 것이다. 또한 이것은 예술론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절대왕정의 궁중 예법이다. 아카데미에선 각종 법칙과 규율이 생긴다. 거기서 벗어나면 국가에 대한 공격으로까지 여결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 초래된다. 이게 바로 고전주의다.

 

 

3. 색과 형을 둘러싼 아카데미의 논쟁

 

 이런 프랑스 고전주의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어느 날 아카데미에서 회의를 하다 라파엘의 마돈나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진다.

 회원 중 하나가 라파엘이 위대한 화가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색감이라는 면에서는 티치안이 나은 것 같다고 한다. 당시 프랑스는 형을 중시했는데 티치안은 색채주의자였다. 논쟁이 벌어진다. 르 브랭은 티치안이 색채의 성취를 위해서 진리를 희생시켰다고 한다. 색감을 강조하다보니 소묘가 망가졌다는 것이다. 그 때 로제이 드 필르는 티치안의 편을 들며 색채야말로 그 회화의 고유한 것이라고 한다. 윤곽 같은 것은 다른 장르들과 공유할 수 있지만 채색만은 회화 고유의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회화의 위대성을 평가할 때 가장 중요시되는 고려 요인으로 뽑아야 한다고 한다.두 번째로 소묘라는 것도 채색이 되어야지 채색이 되지 않는 한 독립적 존재를 가질 수 없다고 한다. 윤곽선은 경계일 뿐 색이 있어야 자기 존재감을 가진다는 것이다. 굉장히 날카로운 이야기다. 화나의 회화의 매채성을 말해주고 두 번째는 선과 색의 관계 속에서 선은 색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선적인 것에서 회화적으로 가는 것이 바로크다. 바로 그 취향을 그는 본 것이다.

 

4. 계속 되는 논쟁과 르 브랭의 정리

 

 그러자 비샹페뉴가 일어나 형태가 바로 진리이고 색채는 부유적 속성, 악시덴스라고 하는데 우연적 속성이라는 것이다. 형이야말로 실체고 색은 악시덴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데카르트 말과 같다. 데카르트가 세계를 둘로 연장실체와 사유실체로 나눈다. 사유실체는 공간을 차지하지 않는다. 정신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물이라는 것은, 이 사람은 익스탕튜, 연장실체라고 했다. 부피와 길이, 형이 있다는 얘기다. 사물의 본질이라는 건 결국 형이고 색은 우연히 갖게 되는 속성에 불과하다고 한다.

 르 브랭이 정리한다. 화가는 사회적 지위에서 염료 가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형을 모르면 화가가 물감 만드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자 로제 드 필르가 다시 한 번 공격한다. 그들의 전범이었던 푸생과 당대의 루벤스를 비교하는 당시로서는 놀라운 방식을 들어 색채의 편을 든다.

 

 

5. 로제 드 필르의 의의

 

 로제 드 필르의 등장은 비평 역사상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이 사람은 화가가 아니었고 아카데미 소속도 아닌 바깥에 있는 사람이다. 비평은 예술가들이 몫이었는데 소인비평이 성립한 것이다. 그는 예술가 절대주의, 절대왕정을 무너뜨리고 최초로 소인비평을 한 사람이다.

 두 번째로 고대귀속성을 부정한 것이다. 고대그리스와 르네상스를 최고로 치던 사람들과 달리 그는 어떤 면에서는 루벤스가 더 낫다고까지 얘기한다. 당대를 긍정하는 것이다. 신구논쟁이라는것이 이렇게 벌어지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는 인간이 항상 신들 아래 있을 필요는 없다고 얘기를 한다. 당대성을 강조한다는 거다. 이런 태도는 벌써 모더니즘적인 태도다.

 그 다음에 비펴이라는건 규칙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미 존재하는 죽은 규칙을 적용하는 문제가 아니라 살아있는 어떤 것, 살아있는 요구들, 사람들의 살아있는 성향들, 그 시대의 정신에 따라서 판단해야 되는 거고 거기에 필요한건 죽은 시대의 규칙이 아니라 자연적인 눈이다. 고전주의자들이 합리적인 눈으로 봤던 규칙체계에 거부감이 있다는 것이고 더 나아가면 본성, 천재, 재능, 이런 것들이 규칙보다 위에 있다고 얘기하는 거다. 따라서 아름다운 작품을 만든다는 것은 죽은 규칙이 아니라 살아있는 재능이다. 낭만주의의 관념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로제 드 필르는 크게 보면 고전주의적 전통에 있는 살마이다. 다만 그 안에서 당대인들, 루벤스 같은 사람을 평가했다는 것이다.

 

 

6. 프랑스 고전주의의 쇠락 - 로코코시대로

 

 1683년에 콜베르가 죽는다. 후원자가 사라진 것이다. 1690년에 르 브랭도 사망한다. 수집가들은 푸생이 아닌 루벤스 것을 사기 시작한다. 취향이 변하고 프랑스회하가 시작된다. 관능적이고 자유로운 로코코 취향이 시작되는 것이다. 뒤보스란 사람은 후에 색채가 중요하냐, 소묘가 중요하냐는 화가 개인 취향의 문제라고 간단하게 얘기한다. 여기서 무너져 버린다. 화가의 취향을 평가하게 되면서 이탈리아에 완전히 종속되어 있었던 프랑스 회화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프랑스 회화로 발산한다. 재밌게도 로제 드 필르는 <화가들을 재는 저울>이라는 저서를 쓴다. 어쨋든 그도 17세기의 사람이기 때문에 수학적, 합리적으로 평가한다. 푸생 53점, 루벤스는 65점이다. 당시로서는 굉장히 센세이셔널한 것이었다. 다른 나라에서 다 바로크 할 때 프랑스에서만 푸생의 고전주의였는데 여기서도 로제 드 필르르 통해 고전주의에 대한 바로크의 승리가 시작됐다는 것이고 프랑스는 거기서 바로 로코코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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