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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서양미술사 1강 미술사에서 양식의 변화와 비례론 01

by 갓미01 2013. 9.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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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앤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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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서양미술사 1강. 미술사에서 양식의 변화와 비례론



01. 비례론에 관하여


1) 강의 개요

 기존의 통사적으로 정리된 미술사를 공부하다보면 여러 가지 유파와 장르들이 그냥 넘어 가는 경향이 있었다. 더 깊은 이해를 위해 새롭게 구성된 미술사를 공부하기로 한다. 미술사를 그냥 보는 것보다 미술사학에서 잘 쓰인 유명 논문들과 저서들을 중심으로 역사적인 흐름을 구성하게 되면 더 좋을 것이다.
 '미술사 깊이 읽기'의 콘셉트를 가진 본 강의는 첫 번째로 파놉스키(E.Ponavski)의 '양식 발전 모상으로서의 비례론의 발전'이라는 짧은 논문을 채택했다. 2-30페이지의 분량인 이 논문은 이집트에서 출발해서 고대 그리스, 중세, 르네상스까지 포괄하고 있다. 또한 미술의 두가지 요소인 형과 색 중 형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비례론의 문제이기 때문에 첫 번째 시간에는 형에 관한 것, 두 번째 시간에는 색에 관한 것, 색을 어떻게 쓰는 문제를 다룰 것이다.


2) 미술사에서 양식의 변화

 미술사에 있어서 시대와 문화에 따라 양식은 달라진다. 그래서 양식이 왜 그렇게 변화하는가에 따라 여러 가지 이론들이 있으며 크게 서너 가지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 세계관의 변화로 보는 관점
 양식의 변화를 세계관의 변화로 보는 이론이 있다. 특정한 양식을 만들어낸 사회가 있고 그 사회의 성원들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있다. 그 세계관이 변하게 되면 당연히 양식도 변하게 된다. 고딕시대의 건축과 르네상스 양식은 다르다. 고딕시대는 신중심주의다. 반면 르네상스의 경우에는 인간의 비례론, 원과 같은 돔형 구조들이 많은데 인간중심주의 사고방식을 따른 것이다. 이렇게 세계관의 변화에 따라서 양식이 변화한다. 우리는 로마네스크양식과 고딕양식의 교회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 다 기독교 중세지만 세계관에 약간 차이가 있고 따라서 양식의 변화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양식변화의 근원, 근거, 양식변화의 원인으로서 당시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세계관을 찾아들어가는 작업을 미술사에서 '정신사로서의 예술사'라고 얘기한다.

- 예술의지의 변화로 보는 관점
 우리나라의 건축물을 보면 '그랭이법'이라고 해서 주춧돌 역할을 하는 나무에 맞춰 돌을 판다. 자연과 인공의 경계가 없는 것이다. 반면 일본의 정원예술은 완벽한 인공미다. 그래서 우리의 의지가 미메시스mimesis라고 하면 일본은 이미타티오imitatio다. 미메시스는 '담기'고 이미타티오는 '재현'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건축을 만들고 싶어 하며 그러기 위해 여러 가지 테크닉을 발견해낸다. 그것은 의지가 다른 것이다.
 사람이 의지만 있으면 그 능력을 언젠가는 찾아낸다. 의지가 달라짐에 따라 양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 재료의 변화로 보는 관점
 젠퍼는 양식을 결정하는 것이 재료라고 주장한다. 한국에서는 그리스조각 같은 작품이 나오지 못한다. 화강암으로는 그렇게 조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남부 이탈리아 쪽과 그리스는 대리석이 많이 나서 대리석으로 건물을 지을 수 있지만 북쪽으로 올라가게 되면 대리석이기 때문에 수입해서 쓰거나 벽돌을 구워 만든다. 이렇게 문화마다 자기들이 가용한 재료에 따라 양식을 쓰게 된다는 것이다. 현대건축과 19세기까지 건축의 차이는 재료의 차이에서 출발한다. 19세기까지는 자연의 재료를 그대로 건축으로 옮기는 반해 현대건축은 재료부터가 인공이다. 철근, 콘크리트, 유리로 건물을 짓게 되니 당연히 옛날처럼 유기적인 형태라기보다 추상적인 형태가 어울린다. 기하학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다. 이런 방식으로 재료에 따라서 양식이 달라진다는 유물론적 견해가 있다.


3) Kunst wollen

 양식 변화를 예술의지와 연결시키는 이론은 다른 이론들과는 달리 예술발전의 원인으로 예술 내적인 이유를 들고 있따. 그러나 그 이론에는 한계가 있다. 과학적으로 얘기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미술사학이라는 것도 일종의 학문인데 주관적인 느낌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객관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되는데 양식의 변화를 비례론의 변화로 설명하게 된다면 그것이 가능해진다. 비례론은 숫자로 표현이 되기 때문에 수학적인 정밀성을 가지고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인간들은 비례론을 예술의 창작에 도입해왔지만 그에 관한 연구는 이전에 없었다. 파놉스키는 그것을 예술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지배하고 있는 낭만주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예술이라는 것은 낭만주의적 관점에 따르면 이성의 저편에 있는 것이다. 실제로 오래된 논란이 있는 것이다. 왜냐면 낭만주의를 낳는 토대가 되었던 것이 고전주의적 독단이었다. 고전주의자들은 예술은 이성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전주의자들도 예술이라는 것이 반드시 합리적인, 이성만 가지고 되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이성+a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뭔지 모를 a가 예술의 본질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낭만주의자들이다. 그들은 예술의 이성을 초월해 있는 어떤 것이라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수학적 비례론으로 설명한다는 것에 대해 강한 거부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예술을 낭만주의적으로 보는 동안에는 비례론이라는 게 예술사에 의해 발달하기가 힘들었다.


4) 비례론의 정의

하지만 Kunst wollen이 실존한다는 것을 증명하는데 비례론만큼 훌륭한 것은 없다. 그래서 먼저 비례론의 정의를 내려보겠다. 비례론이라는 것은 어떤 대상, 특히 동물의 신체인데 어떤 살아있는 자연적인 대상, 특히 인간의 신체를 묘사할 때, 그 다음에 그것인 언젠가 문제가 되냐면 그것이 예술적으로 묘사하는 것이 문제가 될 때 그때 각 신체의 부분과 부분 혹은 부분과 전체의 수적 관계 이게 바로 비례론이다. 쉽게 말하면 살아있는 생명의 크기관계에 관한 이론이다. 비례론은 옛날부터 존재했다. 고대 이집트 때부터 비례론은 존재했다. 예술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옛날부터 인간의 신체였다. 인간의 신체를 어떻게 묘사하나가 가장 중요했고 인간의 신체를 묘사할 때 가능한 한 보기 좋게 묘사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의 수적 비례관계를 명확히 알아야 한다. 이런 필요에서 사람들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비례론이라는 것을 발달시키게 됐다. 


5) 객관적 비례와 제작적 비례

 비례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모델을 그린다고 할 때 내가 본 사물을 똑같이 묘사할 수 있다. 그때 그림은 사진에 가까워지고 이런 것을 객관적 비례라고 한다. 즉 그림 속에 묘사된 이미지, 그 이미지의 실체비례가 바깥에 존재하는 실물, 그 모델이 되는 실물의 비례와 딱 맞아 떨어질 때 그것과 일치할 때 그것을 우리는 객관적 비례를 취한다고 얘기한다. 반면 대상을 보고 그것의 신체비례와 관계없이 변형시켜서, 왜곡시켜서 완전히 다르게 그릴 수도 있다. 그것을 우리는 제작적 비례라고 한다.
 양식적 관점에서 보게 되면 인체를 묘사할 때 대개 어떤 시대든지 이 두 개의 극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는 현상을 보인다. 그런데 양자는 서로 배척하는 관계가 있다. 객관적 비례를 따르게 되면 점점 실물처럼 보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회화가 거의 자연주의나 사진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제작적 비례는, 제작적 비례로 가면 갈수록 실물에서 멀어져 그림자체가 일종의 구성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비례론이 구성론이 되버리고 이미지는 모너먼트나 장식, 디자인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객관적 비례에서는 이미지와 바깥에 있는 실물의 관계가 굉장히 중요하다. 반면에 제작적 비례는 작품 내적인 것, 이 화면의 배치라든지 구축의 문제가 더 중요해진다. 


6) 객관적 비례와 제작적 비례가 일치했던 이집트

 이집트 조각은 고도로 양식화되어있다. 그래서 실물과 같은 느낌을 안준다. 디자인 같은 구성과 같은 느낌을 준다. 이것은 제작적 비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측정해보면 실제 인체비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캐논(작품을 제작할 때 이상적인 신체비례)이라는 게 몇 천 년 전에 확립이 돼서 커다란 변화 없이 내려가 버린다. 그들은 실물을 측정해서 평균치를 얻고 수치를 정해놓은 것이다. 그것을 조각상을 제작할 때 적용하고 그것이 전통으로 굳어져 쭉 내려오는 가운데 양식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집트 사람은 상당히 보수적이었기 때문에 한 번 정해놓은 캐논은 몇 천 년 동안 변하지 않는다. 이집트도 사회변동에 따라 양식의 변화가 있다. 사회가 리버럴해졌을 때 이들에게도 자연주의 양식이 등장한다. 그러다 다시 보수화되면 옛날 양식으로 돌아간다. 그런 흐름은 있지만 큰 변화 없이 쭉 내려오는 것이 이집트인의 양식이다. 이집트인들은 지구상에서 거의 유일하게 객관적 비례와 제작적 비례가 행복하게 결합된 문명을 가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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