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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서양미술사 2강 제작적 비례와 객관적 비례 - 르네상스 이후의 비례론

by 갓미01 2013.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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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앤스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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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서양미술사 2강. 제작적 비례와 객관적 비례 02. 르네상스 이후의 비례론




01. 르네상스 - 객관적 비례의 재등장


 르네상스면 객관적 비례가 다시 등장한다. Wollen(하려고 하는 의지)과 Konnen(할 수 있는 것)을 구분했다. 우리가 르네상스의 관점에서 중세작품들을 보게 되면 못 그린 그림 같다. 그래서 Konnen의 관점에서 미술사를 보면 중세양식은 발전하지 못한 것, 서구식으로 그리지 않은 것은 미개한 양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르네상스예술은 르네상스 예술대로, 중세예술은 중세예술대로 아름답다고 평가한다. 미적 평가 자체가 다원주의화된 것이다. Wollen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이 Wollen이 사라진다면 Konnen도 사라지게 된다. 중세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그리스미술을 따르지 않자 몇십년 후에는 고대그리스처럼 그릴 수 없게 된다. 처음에는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나중에는 그렇게 그릴 수가 없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중세 천년이 지나가고 1200년대에 다시 사람들이 현세를 긍정하기 시작했다. 다시 Kunst wollen이 바뀌어가는데 Konnen이 안 따라주는 것이다. 그것을 되찾는 과정, 역사가 르네상스라고 생각하면 된다.


 르네상스에서 고대 그리사의 객관적 비례론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르네상스 시대의 특징 중 하나는 이론과 실천이 따로 논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비례론의 실천은 객관적 비례를 추구하고 있다. 모델들을 데려다놓고 수많은 습작들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아예 죽은 사람을 갖다놓고 해부까지 한다. 그러나 이들의 비례론의 이론은 아직까지도 상당히 중세적이었다. 그것은 플라톤주의의 영향 때문이다. 완전한 도형에 맞추려는 비례론의 이론적 경향이 아직도 우주론적인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그런데 이론과 실천의 이중적인 면이 보인다. (ex. 다빈치의 비례론, 알베르티의 회화론) 르네상스 예술가들은 경험적인 관찰과 위배되는 주장까지 한 것이다. 그것은 고대의 부활에서 플라톤 철학이 부활했고 그러다보니 인문주의적인 고대의 부활이 한편으로는 이론과 실천에서 묘한 괴리, 병존하는 양상을 보였다.



02. 마니에리즘 시대와 뒤러의 비례론


 마니에리즘은 어떻게 보면 불행한 시대에 속한다. 마니에리즘은 영어로 옮기면 매너리즘이다. 르네상스시대 사람들은 회화를 과학으로 이해한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성이 뛰어났던 것은 그들이 고대그리스를 부활시킬 때 많은 발명을 했기 때문이다. 1500년대쯤 되자 더 이상 발명할 것이 없다.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서 진정한 창안은 없고 조금 바꿔보려는 시도가 있을 뿐이었다. 이 시기를 마니에리즘 이라고 한다. 그러나 마니에리즘도 나름대로의 맛이 있다. 아주 묘한 매력이 있는 시대였다. 과학적 사고방식과 주술적 사고방식이라는 마술적 사고방식이 동시에 존재한다. 오늘날, 21세기 디지털시대와 비슷하기도 하다. 그때 뒤러는 비례론을 위한 비례론을 만든다. 과거에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것을 재현할 목적으로 비례론을 연구했다면 그런 목적은 완성됐다. 이제 비례론의 예술화가 돼버린다. 거꾸로 디자인과 비슷해지는 것이다. 실제 창작에 전혀 쓸 수가 없는 그런 것임에도 뒤러는 비례론자체에 몰두했다. 



03. 근현대의 비례론


 근대로 들어오면 완전히 다른 관점의 비례론이 등장한다. 목적이 내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표준화이다. 우리에게는 산업의 비례론이 있다. 다른 세대나 다른 나라에서 생산된 옷을 입을 때 비례가 안 맞는 경우가 종종 있다. 표준화의 문제로 오늘날의 비례론은 표준화를 위한 비례론이라는 것이다. 르꼬르뷔제는 인체를 모듈로 해서 공간을 구축하는 원리로서의 비례론을 도입한다. 완전히 다른 비례론이다. 최근에 비례론이 재등장했는데 비례론의 과제가 새로 생겼기 때문이다. 컴퓨터 그래픽 때문이다. 피사체가 없는 상태에서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비례론이 도입되었다. 그러나 그 정도를 제외하고는 현대로 오면 비례론은 끝났다. 오늘날 비례론은 끝났다. 사진의 등장으로 회화가 사진이 할 수 없는 것을 추구하다보니 제작적 비례를 추구하게 되고 좀 더 지나면 아예 재현이 없어진다. 회화가 자연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것이다. 순수회화로 가게 되면 비례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비례론이 없는 시대가 되고 그런 시대의 비례론은 상업적인 영향을 받는다. 주기적으로 표준화를 위해 사람들의 신체를 계속 측정한다. 아니면 컴퓨터 그래픽과 같은 새로운 재현의 의미를 찾는데 비례론이 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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