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도채비 잡은 보말하르방
* 요약 : 보말하르방은 아들들과 빈 밭에 마소를 에워 똥과 오줌을 싸게 하여 지력을 돋구는 일을 하고 있었다. 이 일을 주로 밤에 하게 되는데, 하루는 날이 채 어둡지도 않은 때부터 도채비가 나와 마소를 놀래키자, 담이 센 보말하르방은 도채비를 하나씩 잡아서 가지고 다니던 동고령착에 담아 뚜껑을 닫아 두었다. 집에 와서, 밝은 날에 꺼내 보니 말똥 부스러기와 사기사발 조각들이 들어있었다.
* 보말하르방은 과거 표선리 던드리못 지경에 살았던 김원종씨 부친의 별명이었다. 이 할아버지가 젊은 때 장가 들어 아이들을 낳으며 사는데 옛날에는 빈 밭에 마소를 에워 똥과 오줌을 싸게 해서 지력을 돋구는 일을 했다. 이 일은 주로 밤에 하게 되는데 어느 날은 보말하르방이 연디뱅디에서 이일을 돌보고 있었다. 이 때는 비가 오려면 도채비도 나오고 <그슨새>도 나왔다. 그슨새는 하늘이 가득하게 앞을 막아서는 허깨비인데 이것이 나타났을 때 아래로 뺀 사람은 살아나고 위로 빠져나간 사람은 죽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날은 날이 채 어둡지도 않은 때부터 도채비가 나와서 소들은 안 놀래는데 말들은 놀래서 와당탕 와당탕 사람쪽으로만 다가서는 것이었다. '오라, 요놈의 도채비 내가 널 잡아주마.' 담이 센 보말하르방은 도채비가 가까이 오면 하나씩 잡아서 가지고 다니던 동고령착에 담아 뚜껑을 딱 닫아 두었다. 집에 와서, 벽장 위에 놔뒀다가 밝은 날에 꺼내 보니까 말똥 부스러기와 사기막주기(사기사발 조각)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보말하르방의 무덤은 지금도 하천오름 서녘밭에 묻혀있다.
2. 가믄장아기
* 요약 : 부부거지 사이에서 딸들이 태어났는데 셋 째 가믄장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부자가 되었다. 이게 모두 누구 덕이냐는 부모의 질문에 가믄장아기만 제 덕이라고 답하여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가믄장아기가 쫓겨난 후 남은 두 딸은 벌레가 되고 부모는 장님이 되어 다시 거지가 된다. 결혼을 하여 부자가 된 가믄장아기는 부모가 걱정되어 거지잔치를 열고 부모를 찾아 행복하게 산다. 세월이 흘러 가믄장아기는 운명을 다스리는 신이 된다.
* 옛날옛적 부부거지가 살았는데 그 사이에 딸들이 태어났다. 첫아이는 마을사람들이 아기를 잘 기르라며 은그릇에 밥을 퍼주어서 은장아기이고, 둘째는 놋그륵에 밥을 퍼주어 놋장아기이고, 셋째는 검은 나무바가지에 밥을 퍼 주어서 가믄장아기라고 이름을 짓게 된다. 그런데 가믄장아기가 태어나면서부터 집안에 논밭, 소, 말, 기왓집이 생기게 됐다. 하루는 부모가 세 딸을 불러 누구 덕에 이렇게 잘 먹고 잘 사냐고 물었더니, 두 언니들은 다 부모 덕이라고 했지만 가믄장아기는 제가 타고난 덕 때문이라고 답하여 집에서 쫓겨나게 된다. 가믄장 아기를 쫓아내고 맘이 짠한 부모는 언니 둘을 시켜 가믄장아기를 불러오게 하는데 언니들은 거짓말을 하고 그로 인해 벌레가 된다.
고생 끝에 가믄장아기는 깊은 산 속 마를 캐고 살아가는 삼형제의 집에 찾아가게 된다. 막내가 부모를 잘 섬기고 성격도 좋은 것을 안 가믄장아기는 선뜻 같이 살 것을 제안하고 가믄장아기와 막내아들은 결혼을 하게 된다. 가믄장아기는 신랑과 마 캐는 들판에 가서 마를 캐던 구덩이에 가보는데, 그곳에서 은덩어리를 발견하고 아주 잘 살게 된다.
가믄장아기는 딸들이 그렇게 되고 나서 장님이 되어버린 부모가 거지가 되어 고생할 것을 생각하고 걱정하며 궁리 끝에 석달 열흘 동안 거지 잔치를 연다. 잔치가 시작되자 거지들이 구름같에 몰려드는데 석달 열흘 마지막날 눈먼 거지 부부가 나타난다. 잔치가 끝날때까지 밥을 주지 않고 내버려두다 지친 부모님을 따로 모셔 진수성찬을 대접하고 왜 이리 사는지 묻고 막내딸을 내쫓아서 이렇게 눈멀고 거지가 되었다고 하는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가믄장아기임을 밝힌다. 부모는 눈을 번쩍 뜨고 부모님을 모시고 행복하게 살았다. 세월이 흘러 가믄장아기는 사람들의 운명을 다스리는 신이 되었다.
3. 김녕 뱀굴이야기
* 요약 : 김녕리에 뱀굴에 매년 처녀를 바쳤다. 이 말을 들은 서연 판관이 굿을 하도록 해서 나온 뱀을 죽였다. 무당은 빨리 성으로 가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했다. 서연이 성으로 가는데 나졸이 하늘에서 피비가 온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서연판관이 돌아보자 그 자리에서 죽었다.
* 구좌면 김령리 동쪽에 있는 큰 굴은 옛날에 뱀이 살았다고 해서 '뱀굴'이라고 부른다. 다섯 섬들이의 항아리만큼이나 몸통이 큰 뱀인데, 매년 처녀를 제물로 올려 큰굿을 했다. 만일 이 굿을 하지 않으면 그 뱀이 나와서 이 밭 저 밭 할 것 없이 곡식밭을 다 밟아 휘저어 버려서 대흉년이 들었다. 그래서 매년 처녀를 희생으로 바친 것이다. 양반의 집에서는 딸을 잘 내놓지 않아 무당과 같은 천민의 딸이 희생되었다. 그래서 무당이나 천민의 딸은 시집을 가지 못했다.
이러할 즈음, 조선 중종 때 서연이 19세의 나이로 판관으로 부임을 하였다. 서판관은 뱀굴의 소문을 듣고 괴이한 일이라고 분개하며 술, 떡, 처녀를 올려 굿을 하게 하도록 하고, 몸소 군졸을 거느리고 김녕 뱀굴에 이르렀다. 굿이 시작되어 한참 진행될 때 큰 뱀이 나와 술과 떡을 먹고 처녀를 잡아먹으려고 하자 군졸과 더불어 창검으로 찔러 죽였다. 이것을 본 무당이 서판관에게 빨리 말을 달려 성안으로 가되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일러 주었다. 서판관이 성으로 말을 달려 성 안으로 향했다. 무사히 성 동문에 이르렀을 때 한 군졸이 뒤쪽으로 피비가 온다고 외쳤다. "무슨 비가, 피비가 오는 법이 있느냐?" 서판관이 무심코 뒤를 돌아보는 순간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뱀이 죽자 그 피가 하늘에 올라 비가 되어 서판관의 뒤를 쫓아온 것이다.
4. 산호수와 마마신
* 요약 : 마마라는 전염병을 퍼뜨리는 마마신이 바람을 타고 날아와 주민들을 수탈하자, 해녀가 자신을 희생하며 산호수를 구해 마마신 일당을 물리친다.
* 제주도의 마마신은 바람을 좋아해 따뜻한 봄부터 가을까지 바람이 부는 대로 바람잔등을 타고 나들이를 다녔다. 사람들은 마마신이 찾아오면 가진 것을 모두 내어 정성껏 차려 대접했다. 만일 대접하지 않으면 마마신은 마마병정들을 풀어 마마병(천연두)를 퍼뜨렸다. 해마다 찾아오는 마마신을 대접하느라 지친 사람들은 회의를 열어 마마신을 막을 돌담을 쌓아보지만 실패한다. 사람들이 점차 마마병에 걸려 마마신의 기승에 더 시달리게 됐다.
고심하던 사람들은 용왕의 힘을 빌리기로 결의하고 마을에서 잠수 일을 가장 잘하는 상군 해녀를 골라 용왕께 간청하도록 한다. 해녀는 매일 바다 속을 누볐으나 용궁 가는 길을 좀처럼 찾을 수 없어 신령에게 부탁하자 딱한 사정을 들은 바위 신령이 몰래 용궁 길을 일러주었다. 용궁길은 바다 한 가운데 커다란 동굴로 뚫려 있었는데 아무리 헤엄쳐 가도 굴 끝이 나타나지 않았다. 해녀는 포기하지 않고 죽을 힘을 다해 들어가는데 해녀의 정성어린 목매임에 감동하였는지 해녀는 어느새 환히 밝은 곳에 이르러 있었다.
드디어 해녀가 용왕 앞에 사람들의 고난을 호소하고 용왕은 바위신령과 군사를 풀어 마마신을 포위하였다. 바위 신령의 군대들은 맨주먹으로 때려잡으려 하다가 마마 병정들이 창칼과 활을 들고 돌격해 오는 바람에 수많은 바위 신령은 마마 병정들에 찔려 구멍이 뻐끔뻐끔 뚫려 갔다. 그러나 바위 군대들은 하나 둘씩 마마 병정들을 잡아 없애고 그러느라 큰 바람이 석 달 열흘 동안 일었다. 이때 용궁으로 간 해녀가 하나의 산호수로 굳어져 바닷가로 떠밀려 올라왔다. 그 산호수를 보자마자 마마 병정들은 모두 죽어 버리고 마마신을 달아나기 시작했다. 바위 신령은 단숨에 마마신을 잡아 없애고 마을 사람들은 기뻐했다. 마마신이 사라지자 내린 빗물이 바위 신령들을 씻어냈다. 그러나 바위마다 뻐끔뻐끔 뚫린 상처들만은 씻어 버릴 수 없었다고 한다.
평화가 찾아온 뒤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은 상군 해녀의 용기 있는 희생에 감사하며 그 이후 크게 음식을 차려 용왕제를 지내게 됐다. 또한 오늘날까지도 제주도의 수많은 해녀들이 산호수를 지님으로써 잡신을 예방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5. 여우물
* 요약 : 제주도 서귀포시에서 법환에 이르는 사이에 늘 여우가 나타난다 하여 여우물이라 불리는 곳이 있었다. 어떤 관리 이 물가를 지나는데 한 여인을 만나고 말에 태워 동행을 하는데 관리가 이 여인이 여우가 둔갑한 것을 알아차리고 집으로 빨리 달려가 개에게 물려 죽게 했다. 그 이후 여우물에는 여우가 나타나지 않았다.
* 옛날 제주도에는 서귀포시에서 법환에 이르는 사이에 여우물이란 곳이 있었다. 이 물가에는 늘 여우가 나타난다하여 여우물이라고 불리웠다. 옛날에 어떤 관리가 이 물가를 지나게 되었습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에 혼자 몸이라 그렇지 않아도 마음이 허전하던 순간 반갑게도 혼자가는 어떤 여인을 만나게 되었다. 혼자라 쓸쓸하고 무서웠던 찰라 잘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인이 먼저 "아주버니, 어디까지 가십니까? 같이 벗을 하여 가시지요" 라며 먼저 벗을 하여 가자는데 반가웠고 어여뻐 더욱 마음이 흡족했다. 이에 "예, 어쩐 일로 이런 밤중에 혼자 밤길을 가십니까. 저도 마침 혼자 가는 길이라 심심하던 차에 잘 되었습니다"라고 관리는 여자의 청을 받아들였고 말에 태우려 했다. 앞에 타라는 선비의 말에 여자는 계속 뒤에 타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이었다. 몇 번의 실랑이가 오가고 관리는 이 여자가 보통 여자가 아님을 느꼈고 여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 종종 여우가 나타난다는 옛말이 생각나기도 해서 그 여자 말대로 그녀를 뒤에 태우고는 말을 마구 달렸다. 얼마쯤 가니 여자가 천천히 달려달라며 애원을 하기 시작했지만 천천히 달리면 위험해질까봐 그럴수가 없었다. 그럴수 없다며 관리는 도포 고름을 풀어 그 여자와 자기 몸을 꽁꽁 하나로 묶고는 다시 말로 달리자, 여자는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생각이 달라졌다. 관리를 해하려던 애초의 생각에서 혹시 이 관리에게 당하지는 않을까 두려움이 생겨났다. 그래서 마을에 들어서자 내려달라고 조르기 시작했지만, 관리는 못들은 척 더욱 빨리 말을 달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사정을 해도 내려줄 생각은 커녕 더 말을 달리는 관리의 뒤에서 여우인 여자는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변을 당할 것만 같아 겁이 났던 것인데 말을 달려 그의 집으로 들어섰다. 그의 집에는 큰 개가 두 마리 있었는데, 그 개는 주인이 집안으로 들어설 때면 언제든지 나와서 주인을 맞이하곤 했는데, 그때 관리는 등에 단단히 동여매었던 끈을 풀었고, 여자는 마당에 휙 나동그라졌다. 그 순간, 개가 그 여자 앞으로 쏜살같이 내닫고는 여자를 물어 흔들었다. 그 순간 여자는 한마리 여우로 변하고 피를 흘리며 마당 가운데 나동그라져버렸다. 결국 관리는 지혜로 그 여우를 잡게 된 것인데, 그 이후엔 여우물에 여우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6. 월계 진좌수
* 요약 : 여우의 구슬을 삼키고 명의가 된 월계 진국태 좌수가 환자들을 살려내는 이야기.
조선 영조 때 제주도 북제주군 한림읍 명월리에 진국태라는 아이가 살았는데 머리가 똑똑하고 성실하여 훈장의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국태는 지각하는 날이 많아지고 얼굴은 누렇게 변하고 점점 마르더니 아픈 사람처럼 보였다. 이상하게 여긴 훈장이 국태를 불러 물어보니 서당에 오는 길에 시냇가에 고운 처녀가 나타나 국태를 못 가게 붙잡고 가려고 하면 구슬을 입에 물려 주었다가 다시 가져 가고 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놀게 되었다고 했다. 훈장은 그 처녀가 여우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다음엔 구슬을 가지고 장난치면 삼켜버리고 하늘 한 번 쳐다보고 땅을 한 번 쳐다보고 사람을 쳐다보라고 일러 주었다. 며칠 후, 국태는 처녀를 다시 만나게 되고 훈장이 일러준대로 했더니 처녀는 재주를 세 번 넘고 여우로 변신하여 구슬을 내놓으라고 덤벼 들었다. 그 바람에 국태는 하늘과 땅을 보지 못하고 사람만 보게 되었다. 훈장은 하늘을 보면 하늘의 이치를 깨닫고 신처럼 세상의 모든일을 알게 되고, 땅을 보면 땅의 이치를 알고 풍수지리에 능통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워 했다. 하지만 사람을 봤으니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어 훌륭한 의원이 될 것이라고 했다.
국태는 훗날 훈장의 말대로 유명한 의원이 되어 호가 월계요, 좌수라는 벼슬가지 얻게 되었다. 월계 진좌수는 어느 날 아이를 어렵게 낳으려다 죽어가는 여인에게 침을 놓아 임산부를 살렸는데, 이 소문을 듣고 무더운 여름날 다 죽게 된 임산부가 찾아왔다. 진좌수는 맥을 짚더니 문기둥 씻은 물을 먹이라고 했다. 문기둥 씻은 물을 먹은 임산부는 기운을 차리고 아들까지 낳게 되었다. 이후 진좌수의 명성이 더 높아지고 겨울에 다 죽게 된 임산부가 찾아왔는데 하필 진좌수가 집에 없었다. 진좌수의 부인은 어쩔 수 없이 문기둥 씻은 물을 먹이라고 하는데 문기둥 씻은 물을 먹은 임산부가 죽고 말았다. 진좌수는 부인에게 화를 내며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죽게 만들었다며 부인을 벙어리로 만들었다. 겨울에는 모든 문을 닫아야 하는 때라 문 기둥 씻은 물을 마시면 아기 나오는 문도 닫히는 법이라며 말조심 하지 않은 부인에게 벌을 내린 것이다.
이 밖에도 진좌수는 아픈 사람을 위해 밤새 치료하는 명의로써 생활을 했다. 진국태가 좌수라는 벼슬을 얻게 된 일은 바로 임금님의 등창을 고쳐드렸기 때문이다.
7. 도깨비불과 한동리명
* 요약 : 한동리의 옛 이름이 ‘궤’였는데, 마을에 불이 많이 났다. 사람들은 도깨비가 장난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목사는 누군가 장난을 하는 것이라며 한 사람을 지적해 벌을 주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 다른 사람이 얼른 달려가 집에 불을 질러서 벌을 면할 수 있었다. 목사는 이름을 바꾸면 괜찮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이름을 한동리로 바꾸었다. 그랬더니 불이 더 이상 나지 않았다.
* 구좌면 한동리의 옛 이름은 '궤'이고 한자로는 괴이리(槐伊里)라 써왔다. 그런데 80여 년 전 이상하게도 이 마을에서 도깨비불이 나타나 집에 불을 지르곤 했다. 이 도깨비불이 마치 총알처럼 밤마다 바다 쪽에서 날아 들어와서 집 처마에 붙어 삽시간에 불태웠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이대로 가다가는 온 동네가 망할 듯했다. 밤마다 마을 사람들이 교대로 지키며 불을 꺼야만했다. 불을 끄고 보면 처마에 불이 붙은 말똥이 있곤 했다. 그래서 도깨비불은 말똥에 붙은 불이 그 불씨임을 알았다. 동네 사람들은 온통 불안에 떨면서 잠도 못 이루고, 당번들은 밤마다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면서 도깨비불을 내쫓느라 야단이었다.
이 사실이 관가에도 알려졌다. 이 이야기를 들은 목사가 도깨비불이 아니라 사람이 지르는 불이라고 하며 범인을 잡아야 한다고 했다. 그때 이 마을에 사는 이모(李某)라는 이가 나서서, "이것은 도깨비불이 틀림없다"라고 아뢰었다. 목사는 이놈이 범인이라며 말꼬리에 잡아매어 성안까지 달리라고 했다. 이것을 보던 한 동네 허씨가 얼른 자기 집으로 달려가 불을 지르고 불이 났다고 외쳤다. 그래서 죽을 사람을 구하게 되었다.
그러자 목사도 도깨비불임을 인정하고 마을 이름을 바꾸라고 했다. 수인씨가 처음 불을 일으킬 때 홰나무로 불을 일으켰는데, 마을 이름에 괴(槐)자를 쓰기 때문에 불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때 이 마을에 살던 오훈장이 한동리(漢東里)라고 지었다. 홰나무로 일어난 불을 끄는 데는 한수의 물을 끌어와야 하고, 또 한라산 백록담의 물을 끌어온다는 의미도 있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동리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도깨비불의 조화가 차차 없어져 화재가 일어나지 않아 살기 좋아졌다고 한다.
8. 오찰방
* 요약 : 아내가 아이를 가지자 오찰방의 아버지가 소를 열 마리 잡아 먹였다. 그런데 낳고 보니 딸이었다. 또 아이를 가졌으므로 이번에도 딸 일까봐 아홉 마리만 먹였는데 낳고 보니 아들이었다. 그래서 오찰방의 누님이 오찰방보다 힘이 셌다. 오찰방이 제주 각지의 씨름판을 휩쓸자 누님이 남장을 하고 가서 오찰방의 기를 꺾어 놓았다. 오찰방이 천길 낭떠러지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보고 겨드랑이를 보니 날개가 돋아 있었다. 그때 서울 호조판서의 호저궤에 자꾸 도둑이 들었으므로 도둑을 잡을 사람을 구했다. 오찰방이 서울로 가서 도둑을 뒤쫓았는데, 도둑은 소를 타고 칼을 들고 있었다. 도둑이 천기를 짚어보니 제주도 사는 오아무개에게 죽을 운명이어서 순순히 목을 내 놓았다. 오찰방이 도둑의 목을 베어 임금에게 가자 역모를 도모할 우려가 있다며 감옥에 가두었다. 임금은 제주도 사람이니 역모를 일으키지는 못할 거라면 살려 주었다. 오찰방은 벼슬을 얻으려고 모여 있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들어가 상시관에게 우격다짐으로 찰방 벼슬을 얻었다는 이설도 있다.
* 오찰방은 조선 현종 때 대정고을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영관이다. 오찰방의 아버지는 튼튼한 자식을 낳으려고 부인이 임신하니, 소 열 두 마리를 잡아 먹였다. 튼튼한 아들을 기대했으나 딸이었다. 다음에 임신하였을 때에도 오찰방의 아버지는 다시 소를 잡아 부인에게 먹였는데, 이번에도 딸을 낳을지 몰라 아홉 마리만 먹였다. 그런데 낳고 보니 아들이었다. 아버지는 열두 마리를 잡아 먹이지 못해 서운해 하였다.
이 아들이 후에 찰방이 된 것이다. 소를 아홉 마리나 먹고 태어났으니 오찰방은 어릴 때부터 장사였다. 대정 고을에서 씨름판이 벌어지는데 언제나 오찰방이 독차지했다. 제주 삼읍에서 장사들이 모여들어도 오찰방을 당해낼 사람이 없었다.
오찰방은 어느 날 누님에게 힘센 자랑을 했다. 제주 삼읍의 장사들이 모인 씨름판인데 자기를 당해내는 놈이 하나 없다고 뽐낸 것이다. 그러자 누님은 이번 한림읍 씨름판이 있으니 거기 가면 너를 이길 장사가 올 것이라고 했다. 오찰방은 픽 웃었다. 오찰방은 다시 힘을 과시하려고 한림 씨름판에 끼어들었다. 씨름이 벌어졌는데 몇 사람이 달려들어도 오찰방을 이기는 장사가 없다. 오찰방은 득의양양하여 군중을 휘둘러보았는데, 이때 조금 연약한 듯한 사내가 구경꾼들 속에서 나왔다. 의외로 이 사내는 힘이 세었다. 오찰방은 있는 힘을 다 했으나 결국 지고 말았다. 오찰방은 얼른 집으로 돌아와 분통을 터뜨렸다. 오찰방의 누님은 안하무인이 되어가는 동생의 기세를 꺾어 주려고 했던 것이다. 집에 와서 억울하다고 야단인 오찰방에게 누이는 그것이 누구인지 알려주려고 오찰방의 진신을 집의 서가래 틈에다가 끼워두었다. 오찰방은 그 힘센 장사를 찾아 나서겠다고 하는데 신이 서가래 틈에 끼워져 있었다. 오찰방은 이 신을 빼내려고 하는데 아무리 힘을 써도 잘 되지 않았다. 이때 누이가 와서 뭘 그리 힘을 쓰냐면서 서가래를 쑥 위로 들어서 신을 빼어 주었다. 그제야 오찰방은 누나의 힘을 알고 그 씨름판의 장사가 누나임을 알았다고 한다.
오찰방은 어릴 때 무서운 것이 없고 장난기가 심했다. 아버지가 꾸짖을 일이 있어 때리려고 했더니 오찰방은 나막신을 신은 채 달아났다. 아버지는 짚신을 신고 쫓았다. 아들은 바금지오름(대정 고을에 있는 簞山峯)으로 올라갔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봉우리 위로 따라 올라갔다. 아들은 상봉의 칼바위까지 도망가서 우두커니 섰다. 칼바위는 정말 칼같이 끊은 듯이 천인절벽이 된 곳이다. 아버지가 따라가니 아들은 그 절벽에서 떨어졌다. 겁이 난 아버지가 산을 돌아 허둥지둥 내려오는데 나막신 신은 아들놈은 서쪽 산으로 거들거들 올라오고 있는 것이다. 아버지는 어이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벌써 아들이 먼저 와 있었다. 밤이 되어 아버지는 높은 절벽으로 나막신을 신은 채 뛰어 내린 아들이 아무래도 이상스러워 잠든 아들의 옷을 벗겨 보았다.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돋아 있는 것을 본 아버지는 겁이 났다. 다시 옷을 입히고 이 말이 새지 않도록 했다.
오찰방은 자라서 벼슬을 하겠다고 서울에 올라갔다. 이때 마침 서울에서는 호조판서의 호적 궤에 자꾸 도둑이 들어 중요한 문서와 돈을 잃어버리던 때였다. 이 도둑을 잡는 자에게는 천금상에 만호를 봉하겠다는 방이 붙었다. 오찰방은 자신의 힘으로 도둑을 못 잡을까 하고 지원했다. 도둑은 대단한 장사인데다가 무술이 뛰어나다는 말이 돌았다. 오찰방은 좋은 말을 빌어 타고 도둑을 찾았다. 며칠 후 도둑을 찾아냈다. 오찰방은 말에 채찍을 놓아 도둑을 뒤쫓았는데 도둑은 소를 타고, 소의 두 뿔에다가 시퍼런 칼을 묶고 두 손에도 시퍼런 칼을 쥐고 달리는 것이었다. 앞으로 덤비려 하면 쇠뿔의 칼이 무섭고, 뒤로 잡으려 하면 손에 든 칼이 무서운 판이다. 그래도 오찰방은 용기를 내어 뒤를 쫓아갔다. 도둑은 자기를 잡으려던 놈들과 몇 번 싸웠지만 이처럼 용감히 덤비는 놈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천기(天機)를 짚어보니 제주에 사는 오아무개에게 죽게 되어 있었다. 그래서 오찰방에게 제주에 사는 오 아무개냐고 물었다. 오찰방이 그렇다고 하자 도둑은 자신은 오찰방의 손에 죽을 운명이니 목을 베어가라고 했다.
오찰방은 도둑의 목을 베어 말꼬리에 달고 장안으로 들어갔다. 장안에서는 제주 놈이 무서운 도둑을 잡아온다고 야단이었다. 오찰방은 궁중으로 말을 몰아 들어가려고 했다. "이놈, 제주 놈이 말을 탄 채로 어딜 들어오려고 하느냐"하는 호통소리가 떨어졌다. 오찰방은 역시 좁은 데서 난 사람이라, 마음이 졸해서 얼른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갔다. 전하께 도둑의 목을 바쳤다. 전하는 상을 주기는커녕 무서운 도둑을 잡는 놈이니 역적을 도모할 우려가 있다며 옥에 가두라고 했다. 임금이 옥에 가두고 나서 문초를 해보니 제주 놈이요, 또 궁중에 들어올 때 말에서 내려 걸어 들어온 것을 알았다. 임금은 "서울 놈이라면 사형을 시킬 텐데 제주 놈이니 큰일은 못할 것이다. 네게 작은 벼슬을 내릴 테니 가서 일이나 잘해라" 하고 안심하고 찰방 벼슬을 내주었다고 한다.
오찰방이 벼슬을 한데에는 이설(異說)이 있다. 오찰방은 담이 크고 재담이 좋았다. 어느 해 과거를 보러 서울에 올라갔다. 상시관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과거를 보아야 하는데 상시관 앞에는 이미 팔도 선비들이 모여들어 자리가 꽉 차 있었다. 어떻게 들어가서 인사를 올릴 도리가 없었다. 오찰방은 워낙 힘이 장사이고 담대하여 무턱대고 들어갔다. 팔도 선비들이 꽉 들어차게 앉은 데를 쑥 들어가 그저 발로 한 놈씩 쓱쓱 밀어버리고 상시관 앞으로 다가갔다. 그래서 꾸벅 엎드려 절을 하는데 방귀가 나왔다. 오찰방은 얼른 일어서서 팔도 선비를 휘둘러보며 "존전(尊前)에서 방귀는 왜!" 하고 소리질렀다. 초행에 과거보러 와서 부탁하려고 앉은 선비들이라, 누구 하나 대답할 사람이 없었다. 상시관이 오찰방을 쳐다보며 "뭐라?" 했다. "예, 저한테 과거를 준다니 대단히 고맙습니다. 그만 물러갑니다." 다시 절을 하고 오찰방은 그만 나와 버렸다. 거기 앉았던 팔도 선비들은 이제까지 앉아 있으면서도 한 자리 부탁한다는 말을 못하고 기회만 보던 참이었다. 오찰방이 그렇게 하고 물러나니 그제야 선비들도 말문을 열어 한 자리 부탁한다고들 했다. 그러자 상시관은 "남의 방귀나 뒤집어쓸 줄 알았지, 뭐 하러 여기 왔느냐? 과거는 이미 끝났다" 하며 다 쫓아내고 오찰방에게 문과 급제를 주어 찰방 벼슬을 내렸다고 한다. 그래서 '방귀 찰방'이라는 말을 한다.
제주 놈이 자기네들을 똥으로 만들어 놓았다며 그냥 두지 않겠다고 공론을 모은 팔도 선비들은 양지 바른 데 앉아 바지 가랑이를 뒤집어 이를 잡고 있는 오찰방에게 몰려갔다. 오찰방은 힐끗 쳐다보고는 여전히 이를 잡기 시작했다. 팔도 선비, 장안 한량들이 트집을 잡았다. "제주 놈 도야지 다리 그만 하면 얼마나 줄까?" "서울 놈의 네 에미 씹 세 번씩은 주지요." 오찰방은 태연히 대답하고 이만 잡는다. 그러자 모래판에서 씨름을 하자고 했다. 오찰방은 상대방이 수 백 명이라 꾀를 내기로 했다. 오찰방은 씨름을 시작하려고 준비를 해 가며 "이제 날이 저물었는데 씨름을 시작해서 판이 마쳐지겠소?" 하며 눈치를 보았다. 상대방들도 해를 쳐다보더니 내일 아침 하자는 의견이 돌아 그렇게 하기로 했다.
오찰방은 저녁에 모래톱 가에 매어진 배를 찾아갔다. 화장놈을 불러 오늘 저녁 배의 한닻(굵은 밧줄)을 속을 칼로 썰고 문질러 끊을 수 있게 해 두었다가 내일 씨름판에서 "허리띠 할 것 가져오너라." 하면 "여기는 한닻 밖에 없습니다" 하고 그것을 가져와 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 공은 갚겠다고 했다. 그렇게 약속을 해 두고 씨름판에 나갔다. 서울 장안 선비, 팔도 선비들이 오찰방을 죽일 심산으로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오찰방이 화장놈을 부르며 허리띠 할 것을 가져오라고 하니 한닻 밖에 없다고 한다. 오찰방이 그것이라도 가져오라고 한다. 몇 놈이 지고 끌고 하여 한닻을 날라 왔다. 오찰방은 한닻을 손으로 잡아 북하게 무질러서 허리에 졸라매고 다시 북북 무질러서 무릎을 졸라매고 "오늘 한 놈씩 잡아서 바다에 던져 버리겠다"며 사방을 휘휘 도니 선비들이 모두 도망가 버렸다. 이렇게 해서 오찰방은 방귀 덕분에 찰방 벼슬을 했다는 것이다.
9. 선녀바위
* 요약 : 옛날 용왕의 아들이 이곳에 왔다가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를 보고 반해서 선녀를 따라 승천하려다 용왕의 노여움을 사 바위로 굳어버렸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10. 산방산 (산방덕의 눈물)
* 요약 : 산방덕은 산방산의 여신으로 알려진 인물이다. 산방산 암굴에서 태어나 인간 세상으로 나왔으나,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에 실망하여 다시 산방산으로 들어간 뒤 스스로 바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바위에서 쉴 새 없이 물방울이 떨어져서 바위 밑에 샘물을 이루었다. 이것을 사람들은 인간 세상의 죄악을 슬퍼하여 흘리는 ‘산방덕의 눈물’이라고 한다.
* 산방덕과 관련한 이야기는 지역이나 전승자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양상을 보이는데, 대체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형태로 전해 오고 있다.
- 옛날 용모가 뛰어난 처녀가 산방산에 살면서 스스로 ‘산방덕(산방댁)’이라고 불렀다. 그 뒤 부자인 고승(高升)과 살고 있었는데, 하루는 관원이 그를 겁탈하려 하자 산방산으로 들어가 스스로 돌로 변해 버렸다. 고승과 살던 유허지는 지금의 안덕면 화순리 마을 통천과원(洞泉果園)이라고 한다.
- 산방덕은 산방굴사의 여신으로서 인간계에 환생하여 고승과 가연을 맺어 살았다. 호색가인 주관이 그 미모를 듣고 고승에게 죄명을 둘러쓰게 하고 여인을 겁탈하려 하였다. 산방덕은 인간계에 환생한 것을 한탄하여 다시 암굴에 들어가 화석이 되었으며, 그녀의 솟아나는 눈물이 산방굴사의 물방울이 되어 샘으로 흐른다.
- 아랫마을 번내(현 화순리)에 고성목이란 천민 계층의 부자가 살았는데 미모의 산방덕을 첩으로 삼았다. 어느 날 관원이 고성목의 기세를 꺾고 산방덕을 차지할 계책을 꾸미는 것을 알아차린 산방덕은 훨훨 날아 산방산으로 들어가 산방산의 신이 되었다.”
11. 오돌또기
* 요약 : 옛날 제주의 김복수라는 청년이 바다를 지나다 난파되어 의식을 잃게 되는데 눈을 떠보니 눈 앞에 임춘향이라는 여인이 간호하고 있었다. 이후, 임춘향과 부부가 된 김복수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도 고향의 홀어머니와 친구들이 보고싶어 혼자 고향인 제주에 가서 가족들을 데리러 오려고 하는데 춘향의 오빠의 꾀에 빠져 돌아오는 배를 놓치고 춘향이를 그리워한다. 바닷가로 나가 춘향이를 그리워하며 부른 가락이 오돌또기다.
* 아주 오랜 옛날 제주 섬의 어느 마을에 김복수라는 청년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가난했지만 효자이면서 성품도 곧고 글공부에 열심인 그는 어머니와 동네 어른들의 권유로 과거 시험을 보러 가게 되었다.
복수가 떠나는 날, 바다는 하늘 빛 비단을 펼쳐 놓은 것처럼 잔잔했다. 제주를 벗어날 즈음에 갑자기 폭풍우가 몰려와 배가 난파되었다. 겨우 목숨을 건진 복수는 파도를 따라 흘러 다니다 의식을 잃었다. 복수가 정신을 차렸을 때 눈앞에는 어여쁜 처녀가 간호하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임춘향이고, 유구(오키나와) 사람인데 일본에 있는 오라비를 만나러 가다가 풍랑을 만나 이 곳 ‘안남’(베트남)에 살게 되었단다. 둘은 서로 연민의 정을 느끼다가 사랑을 하게 되었고, 부부가 되어 화목하게 잘 살았다. 금슬이 좋은 부부는 해를 건너 하나씩 자식을 낳아 슬하에 3남 3녀를 두었다.
복수는 행복한 가정을 꾸리면서도 고향의 홀어머니와 친구들이 보고 싶어 잠을 못 이루는 날의 연속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남에 고국의 큰배가 도착했다. 그런데 당시 여자는 배에 태울 수 없어 할 수 없이 복수 혼자 먼저 고향에 갔다가 가족들을 데리러 오겠다는 다짐을 하고 배에 올랐다. 먼저 일본에 간 복수는 그곳에서 잘 살고 있는 춘향의 오라비를 만날 수 있었는데, 그는 당장에 오누이를 만나고 싶어 안남으로 떠나자고 했다.
그들을 태운 배는 제주를 거쳐 안남으로 가려는데. 마침 복수의 고향 제주를 지나게 되자 그는 꾀를 내어 물통에 구멍을 뚫어서 바다에 빠뜨렸다. 그러고는 제주에 잠시 배를 대어 물을 긷고 가자고 했다. 제주에 닿은 복수는 집으로 달려가 동네 어른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배는 복수를 기다리지 않고 안남으로 떠나 버렸다.
배를 놓친 복수는 부두에서 통곡을 하며 울었다. 그러나 아무리 울어도 춘향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달랠 수는 없었다. 그 날부터 복수는 춘향이가 생각나면 바닷가를 찾았다. ‘오돌또기’는 복수의 입에서 저절로 흥얼거리듯 노랫가락이 흘러나온 노래란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복수가 보이지 않았다. 바다로 건너갔다고도 하고, 배를 타고 춘향이에게로 갔다고도 하는 소문이 퍼졌다. 지금의 ‘오돌또기’는 김복수와 임춘향의 애처로운 사연이 사라지고 노래만 남아 전하고 있는 거란다.
12. 자청비
* 자청비의 부모는 주년국 주년뜰의 김진국 대감과 조진국 부인이다. 늦도록 자식이 없던 부부가 부처님께 빌어서 태어났는데, 원래의 약속과 다르게 정성을 들이다 아들로 태어나지 못하고 딸로 태어났다. 자청비는 손이 고와진다는 말에 빨래를 하러 갔다가, 물 아래 거무선생한테 글공부하러 간다는 하늘 옥황의 문곡성 문도령을 만난다. 그리고 남장을 하고는 문도령을 따라나서 3년 동안 거무선생한테 글을 배웠다. 문도령이 하늘 옥황 집에서 장가를 가라는 편지를 받고 길을 떠나자, 자청비는 문도령을 따라나서며 비로서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밝힌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한 번 떠난 문도령은 종내 소식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자청비는 기어이 하늘 옥황의 문도령을 찾아간다. 그리고 문도령과 혼례를 올리지만, 하늘 옥황의 선비들이 반란을 일으켜 문도령을 죽인다. 자청비는 서천 꽃밭으로 가서 환생꽃과 멸망꽃을 얻어다 문도령을 살리고 멸망꽃으로 선비들을 죽인다. 하늘 옥황에서는 자청비에게 하늘에서 살라고 했지만, 자청비는 여러 가지 곡식 종자를 얻어서 땅으로 내려온다. 그리고는 중세경이 되어 농경신으로 사람들이 풍년 농사를 짓도록 도와준다고 한다.
13. 산호해녀
* 요약 : 한 해녀가 웅덩이에 빠져 있는 거북을 살려 주었더니 용궁에서 해녀를 데리러 왔다. 용궁에서 한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 대접을 하고 산호꽃 한 가지를 주었다. 그래서 이 해녀는 평생 마마를 하지 않았다.
* 옛날 모슬포(대정읍)에 한 처녀가 살았는데 누구나 겪는 마마를 겪지 않은 해녀였다. 어느 날 처녀가 금로포(안덕면 사계리)에 갔다가 바다거북이 웅덩이에 빠져 있는 것을 구해 바다에 놓아주었다. 거북은 잠시 후 다시 돌아 와 고맙다는 듯 고개를 꺼떡하고 다시 물로 사라졌다.
그 후 처녀가 용머리(안덕면 사계리) 아래 물 속으로 전복을 따러 들어갔다. 큰 전복을 겨냥해 물 속을 잠수하여 얼마간을 들어가니, 이상하게도 조개로 반질반질하게 장식한 대궐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니 기이한 꽃들이 만발해 있고 화려한 궁궐이 있었다. 해녀가 대궐 문 가까이 가자 할머니가 나오더니 "당신께서 내 자식을 살려줘서 뭐라 고마운 말씀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서 들어오십시오." 해녀가 대접을 후히 받고 나오려고 하자 할머니가 선물로 꽃 한 가지를 주며, 그 꽃만 가지고 있으면 마마를 면할 수 있다고 했다.
해녀는 꽃을 얻어 물밖에 나와 보니, 그 꽃은 산호꽃이었다. 해녀는 그 꽃을 소중히 간직했다. 과연 해녀는 평생 동안 마마를 앓지 않았다.
14. 설문대할망
아름다운 섬, 제주도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창세신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제주를 만들었다는 설문대할망은 본래 옥황상제의 아리따운 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맞붙어 있던 새 세상의 하늘과 땅을 열어 본 죄로 아버지인 옥황상제에 의해 졸지에 땅으로 쫓겨나고 만다. 천상의 공주에서 미천한 땅으로 쫓겨난 설문대공주는 바다 한 가운데 아름다운 섬을 발견했다. 그 때부터 흙을 지어 나르며 자신의 터를 만들기 시작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곳이 바로 제주도가 된 것이다. 설문대할망의 덩치가 어찌나 거구였던지 한라산을 베개 삼아 누우면 다리가 제주시 앞 관탈섬에 걸쳐질 정도였다고 한다. 빨래를 할 때면 한라산을 엉덩이로 깔고 앉아 오른쪽 다리는 서귀포 앞바다 지귀섬에 디디고 왼쪽 다리는 관탈섬에 디딘 채 우도를 빨래판으로 삼아 빨래를 하곤 했다고 한다.
성산 일출봉에서도 설문대할망의 신화를 찾아 볼 수 있다. 성산 일출봉을 오르는 길목에 사람키 일곱 배가 넘는 길쭉한 등 경돌 바위가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설문대할망이 처녀였을 때 성산일출봉에서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등잔불이 낮아서 바느질을 할 수 없게 되자, 언덕만한 바윗돌을 받침대로 사용했던 등경 돌이었다고 한다.
그렇게 제주 사람들과 함께 살아오던 설문대할망은 물장오리 오름의 정상에 자리한 호수에서 최후를 맞게 된다. 설문대할망은 제주도 사람들이 육지까지 다리를 놓아 달라 하자 고운 옷 한 벌을 요구했다. 마을 족장은 설문대할망의 옷을 대령하며 과연 그녀가 다리를 만들 능력이 있는지 보여 달라 했고 한라산 물장오리보다 크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설문대할망은 직접 물장오리 호수 속으로 들어가기에 이른다. 하지만 밑이 터져 한없이 깊어져 버린 물장오리 호수에 들어간 설문대할망은 그만 빠져 죽고 만 것이다.
15. 오백장군
* 요약 : 오백명의 아들을 둔 어머니가 아들들에게 먹을 죽을 끓이다가 죽솥에 빠져 죽었다. 죽을 먹던 아들들은 어머니의 뼈를 발견하고 슬퍼하며 바위로 변해 한라산 오백장군이 되었다. 막내는 바닷가로 달려가 차귀섬이 되었다.
* 한라산 서남쪽 허리에 '영실(靈室)'이라는 경승(景勝)이 있다. 울창한 밀림에 수많은 기암괴석이 하늘 높이 늘어져 있다. 그 바위의 모양이 한 번 보면 나한(羅漢) 같고, 다시 보면 장군(將軍) 같다. 그래서 '오백 나한' 또는 '오백 장군'이라 부른다.
이 오백 장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옛날 어떤 어머니가 아들 오백 형제를 데리고 살아갔다. 흉년이 들어 끼니를 잇기가 힘들자, 어머니가 아들들에게 양식을 구해 오도록 했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와 먹을 죽을 끓이기 시작했다. 큰 가마솥에다 불을 때고 솥전을 걸어 놓고 돌아다니며 죽을 저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발을 헛디디어 죽솥에 빠져 죽어 버렸다.
오백 형제가 돌아와서 이 죽을 먹는데, 다른 날보다 맛이 좋았다. 맨 막내동생도 죽을 먹으려고 솥을 젓다가 사람 뼈를 발견했다. 동생이 어머니가 빠져 죽은 것을 알고 어머니의 고기 죽을 먹은 불효한 형들과 같이 있을 수 없다며 멀리 한경면 고산리(翰京面 高山里) 차귀섬(遮歸島)으로 달려가 한없이 울다가 바위로 변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형들도 통탄하다 모두 바위로 굳어졌다. 이것이 바로 오백 장군이다. 그러니 영실에는 499장군이 있고 차귀섬에 하나가 떨어져 사는 셈이다.
차귀섬의 오백 장군은 대정읍 바굼지오름에서 환히 보인다. 어느 해 한 지관이 바굼지오름에 묏자리를 정하고 산은 좋은데 차귀섬의 오백 장군이 보이는 게 흠이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상제가 차귀섬으로 건너가 그 바위를 도끼로 찍어 버렸다. 차귀섬의 오백 장군에는 턱이 진 자국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한다.
16. 영등할망
* 옛날 옛날, 제주바다에는 영등할망이라는 신이 수평선 저 너머에 살고 있었다. 태풍이 몰아치는 어느 날, 제주 한수리 마을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나갔다가 거친 풍랑을 만나게 되었다. 그런데, 어부들이 탄 배는 사나운 파도에 휩쓸려 그만 무서운 외눈박이 거인들이 사는 나라로 가게 되었다. 외눈박이 괴물이 어떻게 생겼냐하면, 이마 한가운데에 큼지막한 눈이 하나 달려있고 몸체가 거대한 보기에도 아주 무서운 괴물이었다.
이를 보고 있던 착한 영등할망은 이 어부들을 구해주려고 어부들이 탄 배를 몰래 숨겨주었다. 외눈박이들은 눈에 불을 켜고 그 어부들을 찾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배가 보였는데, 어디로 간거지 어이, 영등할망! 방금 여기로 오던 배한척 못보았소 오늘 오랜만에 포식하나 했더니. 에이 아깝다.” “무슨 배가 왔다고 그러나... 나는 개미 한 마리도 못 보았네. 정말이야.” 영등할망의 거짓말에 외눈박이들은 어부들을 놓쳤다고 투덜대면서 돌아갔다. 이윽고 파도가 잔잔해지자 영등할망은 어부들을 풀어주면서 신신당부를 했다. “자, 이제 외눈박이들이 갔으니, 어서 마을로 돌아들가시게. 그리고 마을에 도착할때까지 ‘가남보살 가남보살’ 이렇게 외우고들 가시게. 잊지말게나. ‘가남보살 가남보살’ 알겠나” “예! 할망 구해줘서 고맙수다. 가남보살 가남보살.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어부들은 영등할망과 약속을 하고 고향마을을 향해 바다로 나갔다. 어부들은 가는 내내 ‘가남보살 가남보살’을 외웠다. 그러던 중 드디어 저 멀리 반가운 고향마을이 보이자 어부들은 너무 기쁜 마음에 그만, 가남보살을 외우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쳐 어부들이 탄 배가 다시 외눈박이들이 사는 곳까지 떠내려가고 말았다. 다행히도 영등할망이 아직 그곳을 떠나지 않고 있어 되돌아온 어부들을 보게 되었다. 어부들은 다시 영등할망에게 사정을 했다. “제발 살려주세요. 영등할망!” 몸집은 거인이지만 마음이 착하고 여린 영등할망은 다시 이 어부들을 안전하게 고향으로 돌려보내 주었다. 그러나 외눈박이 거인들은 영등할망이 어부들을 살려주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화를 내며 영등할망을 죽여 버렸다.
이때부터 제주백성들은 바다의 재앙을 막아준 영등할망의 은혜를 생각하며 음력 2월 초하루부터 15일까지 영등굿을 지내고 있다. 어부들은 마음 착한 영등할망에게 감사하며 고기잡이 어부들이나 해녀들은 바다에서 안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자, 풍어를 가져오는 신으로 영등굿을 지내기 시작했다. 이 영등굿은 국가무형문화재 제 71호로 , 제주 칠머리당굿이라는 이름으로 제주시 사라봉에서 재현되고 있다.
또한 제주에선 영등굿을 하는 동안에는 결혼식은 일체 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이상하게도 그맘땐 바닷가의 소라고동 껍질 안이 텅텅 비어있다고 한다. 왜 그러냐면, 바로 영등할망이 모두 다 까먹어서 그런다는 재미난 이야기도 전해져오고 있다.
17. 용궁아들 삼형제와 매오름
* 요약 : 옛날 제주도에 친지개벽이 되기 전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한다. 그때, 남해용궁(南海龍宮)의 아들 삼형제는 국법을 어긴 죄로 이 섬으로 귀양을 오게 되었으나, 가난한 제주섬 사람들은 그들에게 따뜻한 인정을 베풀어 줄 수가 없었다. 세월은 흘러, 용왕 아들 삼형제는 귀양살이를 끝내고 용궁으로 다시 들어갔다. 용왕은 귀양살이했던 아들에게 몰인정하게 대했던 제주섬 사람들이 괘씸하다고 생각하여 제주섬을 삼 년 동안이나 물속에 잠겨 버리게 조화를 부렸다. 그랬었기 때문에 제주섬은 아직까지도 온통 자갈과 가시덤불로 덮히게 되었고, 그때 채 물에 잠기지 못했었던 묏봉우리들에는 그 당시 상황에 알맞게 이름이 붙여져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들이 더러 있기도 하다.
* 옛날 제주도는 천지가 두 번 개벽했다. 사람들이 살기 전에 한 번 더 했다. 남해용궁의 아들 삼형제가 나쁜 짓을 하여 국법을 어긴 죄로 제주도로 귀양을 왔다. 용왕이 아들들을 귀양 보내고 마음이 편치 않아서 어떻게 지내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거북이를 사자로 보냈다. 거북이가 제주에 와서 사는 형편을 보고 용왕에게 가서 아무리 죄인일지라도 차마 볼 수가 없을 정도니 귀양을 풀어 달라고 고했다. 용왕이 그리하기로 마음먹고, 거북이에게 귀양 시절에 잘 대접한 이에게는 은혜를 갚고 그렇지 않은 이들에게 벌을 주겠으니, 잘 살펴보도록 시켰다. 거북이가 살펴보니, 박씨 성을 가진 이가 마뿌리를 삶아 준 것 외에는 대접한 이를 찾을 수가 없었다. 용왕이 이 말을 듣고 진노하여, 섬을 물에 잠기게 하라고 했다. 이때, 박씨 성 가진 이에게는 은혜를 갚기 위해 이런 사실을 알려주며, 아무 날 봉우리에 앉아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런데 박씨가 이 말을 들을 것 같지 않아서 거북이가 요술로 이 사람을 매로 환생(幻生)시켜 주었다. 그리고 이제 물이 섬에 차올라서 고기들이 많아도 1시간 동안은 절대로 잡아먹으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그런데 박씨가 이 말을 어기고 고기를 먹으려고 했다. 이 고기는 용왕이 벌주는 고기라서 먹으면 죽게 돼 있었다.
거북이 이 사실을 알고 매를 움직이지 못하게 눌러 놓았다. 지금 '매오름'은 매가 고기를 먹으려다가 앉아 버린 곳이다. '탈산봉'은 불어난 물에서 봉오리만큼 나와 있었다고 해서 탈산봉이다. '본지오름(표선면 성읍리)'은 본래 뿌리만큼 나와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통오름(성산읍 난산리)'은 통대만큼 나와 있었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호근리 각시바위이고, '가메기'만이 나와서 '가메기오름', '칙오름'은 칡뿌리만큼 나왔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18. 사슴과 백록담
* 병든 노모를 모시고 있던 한라산근처에 살고 있는 효자 사냥군이 노모의 병을 고치고자 사슴피를 찾아서 한라산을 헤매고 다니다, 흰사슴을 한 마리 발견하고 그 사슴을 향해 화살을 날리려는 순간 안개가 끼며 산신령이 나타나 그 흰사슴을 데리고 사라졌다. 나중에 안개가 걷히고 흰사슴이 사라진 곳으로 가보니 흰사슴과 산신령은 어디로 가고 없고 연못만이 남아 있었다. 사냥꾼은 사슴을 잡는 것을 포기하고 그들을 떠서 어머니께 드리니 어머니의 병이 나았다고 한다. 그 후, 그 연못을 백록담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록은 효성이 짓고 심성이 착한사람에게만 보인다고 한다. 지금도 한라산에는 백록이 살고 있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백록을 본 사람은 큰 행운과 무병장수를 함께 얻는다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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