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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 시집 <여장남자 시코쿠>

by 갓미01 2013. 3.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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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병승시집 여장남자 시코쿠 | 랜덤하우스중앙 | 2005

 

'완벽히 타자인 나, 내가 아는 나는 그녀를 마주할 수 있을까?'

 

 

커밍아웃

 

나의 진짜는 뒤통순가 봐요

당신은 나의 뒤에서 보다 진실해지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얼굴을 맨바닥에 갈아버리고

뒤로 걸을까 봐요

 

나의 또 다른 진짜는 항문이에요

그러나 당신은 나의 항문이 도무지 혐오스럽고

당신을 더 많이 알고 싶은 나는

입술을 뜯어버리고

아껴줘요, 하며 뻐끔뻐끔 항문으로 말할까 봐요

 

부끄러워요 저처럼 부끄러운 동물을

호주머니 속에 서랍 깊숙이

당신도 잔뜩 가지고 있지요

 

부끄러운 게 싫어서 부끄러울 때마다

당신은 엽서를 썼다 지웠다

손목을 끊었다 붙였다

 

백년 전에 죽은 할아버지지도 됐다가 고모할머니도 됐다가 ......

 

부끄러워요? 악수해요

 

당신의 손은 당신이 찢어버린 첫 페이지 속에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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