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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이처럼 항상 도구에 대해 마음을 쓰고 타인에 대해 마음을 쓰면서 살아간다. 그리고 그 결과 자신의 존재를 잊는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우리는 삶을 위해 사물을 도구로 사용하지만 사물에 얽매일 수 있고, 남을 배려하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에 신경 쓴 나머지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살아가게 된다. 하이데거는 그것은 자기 자신으로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세계적(도구적) 차원에서 또는 다른 사람들의 차원에서 살아가는 것이 되어버린다고 말한다. 현존재가 나를 망각하고 마치 도구처럼 퇴락해버린 것이다.
그는 이런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불안에서 찾는다. 불안은 공포와 다른 것이다. 공포가 어떤 구체적 대상을 통해 느끼는 것이라면, 불안은 인간 존재에만 고유하게 있는 막연한 불안이다. 그는 이런 불안이 우리의 일상 속에서 도구와 그 관련성이 보이지 않을 때 엄습해온다고 한다. 결국 그것은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는 것으로, 더 정확히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리키는 것이며, 그 결과 무가 드러나는 순간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죽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우리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이 세상에 던져졌지만, 언젠가는 필연적으로 죽음에 봉착해야 하는 것이다. 이 너무나 확실하며 피해갈 수 없는 무의 현존은 '나에 앞서 존재'하는 가능성인 것이다.
결국 삶은 죽음과 늘 함께하는 것이며, 우리는 이를 자각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전체를 파악하게 된다고 그는 말한다. 그는 그러므로 이 무의 한가운데 '있다'라는 존재의 신비에 경탄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이 죽음 앞에서 불안해할 것이 아니라, 죽음을 직시함으로써 우리를 얽매는 많은 일상과 도구들로부터 자신을 자유롭게 하려는 결의를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로써 우리는 본래의 자신을, 우리의 실존을 되찾는 것이다.
*... 다시 말해 과거는 '~아니다'로 저물어가고, 현재는 '~아니다'로 변하고 있으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부재다. 결국 인간의 인식, 즉 대자존재는 끊임없이 무화하면서 무를 만들어내는 무인 것이다. 사르트르는 이를 '무화하는 무'라고 표현했다. 대자는 이렇게 끊임없이 무화하면서 미래로 나아가는 힘을 얻는다. 하지만 그 무란 아무것도 없음이다. 없다는 것은 결핍이다. 그러므로 이 결핍을 채우기 위해 끊임없이 외부의 것을 끌어들이며 또다시 무화한다. 하지만 그것을 채워질 리 없는 무다. 또한 그 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런 이유로 하등의 근거 이유도 없다. 심지어 시간적 흐름을 제외하고는 어떤 방향도 없다. 그 어떤 것도 이 무를 규제하거나 필연성에 얽어매일 수 없으며, 그런 이유로 이 무는 완전한 자유다. 이 대자는 끊임없이 초월하며 무화하고 앞으로 나아가지만, 결핍은 채워지지 않고 자신이 하나의 대상인 이상 자신이 온전히 자신도 될 수 없는 갈증과 답답함을 느끼는 존재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 그것인 인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를 허락받은 유쾌한 존재라기보다, 자유가 하나의 죄처럼 선고된 존재다. 왜 실존적 인간이 끊임없이 바위를 들어 올려야 하는 시시포스의 신화에 비유되는지 알만한 대목이다. (p.441)
* 그렇다면 무엇이 글의 진원지일까? 문화적 약호나 이데올로기일까? 하지만 그런 식으로 뭉뚱그려 예단해버리기에는 텍스트라는 개념이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텍스트란 독자가 독서를 개시할 때 주제나 다른 텍스트 등이 각자의 색채를 띠고 나타나 활동을 개시하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것은 조용한 산책과 같은 것이다. 단순히 길을 걷는 행위가 아니라, 길가의 돌멩이와 산새의 지저귐, 시냇물의 졸졸 흐르는 소리 등이 어우러져 마음 속에 울려 퍼지는 그런 산책 같은 것이다. 이제 단순히 길을 걷는 '작품'과는 달리 독자는 이 텍스트 안에서 글 속을 유유히 산책하며 단어와 여백이 걸어오는 숱한 말들을 음미하고 되받아쳐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그 진원지는 이제 독자가 된다. (p.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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