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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책을 읽는가, 샤를단치

by 갓미01 2014. 4.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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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낯선 사유로 단조로운 세상을 읽는다

 * 독자는 문학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가져오고 그것이 대중의식으로 확산된다. 관념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관찰된 사실들이 빚어낸 대중의식이다. 그것은 또한 지적인 만족을 추구하던 독자들이 책의 마법에 홀려 만들어낸 산물에 불과하다. (p.37)

 

* 모든 개인은 스스로 유일하고 특별한 존재라고 생각하겠지만 그들 모두 특정한 유형에 속해 있다. 인간 개개인은 신성하나 각자의 개성은 개성들의 총합 안에 들어있다. 물론 그 전체를 이루는 각 개인은 유일하며, 그 누구와도 대치될 수 없다. 이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이다. (p.42)

 

 

2. 독자는 벌거벗은 채 거리를 활보하는 작가들의 공모자다

 

 * 한 집단에서의 어휘는 그 세계에서의 소설이 된다. (p.77)

 

 * 비타협적이던 청춘의 시기는 지나갔다. 우리는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살면서 최고가 아닌 최선을 선택해야 함을 인식한다. 너그러워지는 것은 슬픈 일이다. (...) 젊음과 늙음은 지식의 서로 다른 두 상태다. 우리는 더 이상 무리한 젊은이가 아니며 권력에 짓밟히지 않고 계속해서 살아 나가기 위해 유연하게 타협하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결코 타협하지 않고 결단해야만 하는 순간도 있다. 수많은 사건들로 이루어진 인생은 시가 아닌 산문인 것이다. (p.83)

 

 * 절망은 비가 오거나 해가 뜨거나 하는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슬픈것은 오히려 희망이다. 희망에 대한 환상은 목에 두른 스카프처럼 따뜻하게 목덜미를 감싸다가는 이내 목을 조여 온다. (p.97)

 

 * 모든 놀이는 어느 정도의 폭력성을 내포한다. '놀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우리는 자연스레 어린 시절을 떠올리고, 아련한 추억으로 놀이를 이상화한다. 그것은 아마도 인생에서 법적 책임을 지지 않는 유일한 시기에 대한 향수가 아닐까 싶다. (p.106)

 

 

3. 책에 조언을 구하지 말고 책 속의 보물을 훔치라

 

 * 나는 수영을 좋아한다. 좋아하지만 짜증난다. 짜증이 나면서도 좋아한다. 사람들은 이런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사랑하는 대상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기를 원한다. 거짓말을 좋아하는 본성 때문이다. (p.194)

 

 

4. 독서는 죽음과 벌이는 결연한 전투다

 

 * 대담에 임하는 사람은 박식하되 현학적이어서는 안되고, 정중하되 비굴해서는 안되며, 호기심을 가지되 상스러워서는 안된다. (p.232)

 

 * 문학은 다른 지역을 여행하면서 읽더라도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문학의 본질은 그 자체에 내재해 있어서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된다. 반면에 저널리즘의 본질은 대부분 지면 밖에 있어서 독자가 끄집어내야 한다. 문학이 창작이라면 저널리즘은 해석이라 할 수 있다. 저널리즘은 신문지면에 집착한다. 신문에도 때로는 문학이 있고, 수많은 책 가운데에도 옮겨지자마자 퇴색해 버리는 저널리즘이 있다. 그러나 언론은 대중과의 타협이다. 이 점은 문학과의 또 다른 차이인데, 그래서 언론이 독자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선택된 독자는 모닝커피와 함께 뉴스를 보는 불특정 다수가 아닌 특정한 성인 대중이다. (p.242-243)

 

 * 문학과 저널리즘, 이 두가지 글의 핵심적인 차이는 죽음과의 관계에 있다. 문학은 죽음에 대해 말하지만, 저널리즘은 죽은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문학은 유쾌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말할 수 있지만 저널리즘은 불쾌한 것을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저널리즘이 죽음이 아닌 사람들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p.245)

 

 * 책은 인생이다. 진지하고 난폭하지 않은 삶, 경박하지 않고 견고한 삶, 자긍심은 있되 자만하지 않는 삶, 최소한의 금지와 소심함과 침묵과 후퇴로 어우러진 그런 삶이다. 그리고 책은 실용주의가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초연히 사유의 편에 선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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